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 15(완)
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 15(완)
“그만 했으면 해.”
결자해지(結者解之). 결국 시작한 놈이 끝을 봐야 한다. 내가 신세준에게 먼저 전화를 건 건, 아내의 뺨을 내려친 날 밤 이후로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무엇이 두려운건지, 아니면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아무튼 나에게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신세준으로 하여금 건내받은 한 두 통의 ‘통보’ 문자를 수반하고 있었다.
“.................”
-말이 없네?
“아니요. 솔직히 요즘 선배님이 좀 이상해서,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예상을 하고 있었다라. 큭.
“.............”
-................
“.................”
-미안... 하게 됐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큭. 결국 내가 신세준에게 억지로 받았던 사과를 되돌려 주는 샘인가?
“미안하다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흐음.”
-...........
“흐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냐?
바보같지만, 어찌되었든 녀석에게 쿨 한 척 물어보고 싶었다.
“정리할 시간 보다, 후우. 음. 이런 말씀 드리는게... 좀... 후우.”
-해봐.
“과장님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제 몫이겠죠?”-..........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간단하게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신세준은 다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에서 가만히 있던 신세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저 이직을 생각 중이에요.”
-이직?
“네.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그런데. 외국계 회사 본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서.”
-......... 축하한다.
“엣? 핫. 축하라니요. 암튼, 저도 이래저래 고민을 좀 하고 있었거든요. 그 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당장 5년 정도는 미국에서 일하기를 원해서. 그런 참에 과장님 일도 좀 마음에 걸렸고. 또 마침 선배님이 이런 전화를 주시니.”
나는 묵묵히 녀석이 말하는 걸 들었다. 내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뭐 어쩌겠나. 나는 묵묵히 녀석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래서 말씀 드리는 건데, 정말 좀 무리한 부탁인 건 알지만.”
-뜸 드리지 말고, 얘기 해봐.
“그럼, 과장님하고, 정말 딱... 한 번만...”
나는 멍하니 녀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녀석의 윙크, 손가락 브이, 아내의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 갑자기 그런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어쩐지 무덤덤했다.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녀석과, 아내를 두고 ‘마지막 약속’을 잡았다.
“우와. 과장님 집 좋네요?”
녀석이 손에 무언가를 잔뜩 쥐고 우리 집에 들어온 건, 토요일 밤 오후 몇 시쯤이었다. 바깥에 어둠이 자욱이 내려앉은 걸 보니, 일곱시, 여덟시 쯤 되었을까?
녀석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와 아내를 쳐다봤다. 무심한 척 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가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 전날에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신세준과의 약속을 통보했을 때도 그 반응이 아주 볼만했었는데. 지금은 잔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나는 신세준이 선물이랍시고 사온걸 가까스로 건내 받았다. 선물이라 쓰고, 미리 땡겨 받는 ‘화대’라고 읽어도 괜찮을까? 나는 대충 건너 방 어디쯤에 그것을 쟁여놓고 거실로 나왔다.
“헤엑~! 세상에.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이렇게 진수성찬을..”
신세준은, 아내가 미리 차려놓은 –그래봐야 여기저기서 주문하고 사 온 음식이 전부였지만- 음식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는 그런 신세준을 보는 게 좀 그랬는지, 계속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며칠 전에 나는, 고민 고민 하다가 아내에게 신세준에게 이런 저런 일에 대해 도움을 받아서 고마운 마음에 집으로 초대를 했다고, ‘거짓’을 고했다. 결국 마지막도 내 손으로 마무리 짓는 샘인가?
“자, 건배!!!”
우리 부부와는 다르게 신세준은 신나서 건배를 자청했다. 어색하게 잔을 들어 맞춰 주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버릇처럼 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이 쉽게 자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저, 사실.”
내가 신세준과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신세준이 쭈뼛거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은 비밀로 해 두려고 했는데, 평소 저를 아껴주셨던 과장님이라. 그냥 말씀 드릴게요.”
아내와 나는 신세준을 쳐다봤다. 나는 ‘비밀‘ 이라는 말에 놀라, 그리고 아내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
“저, 이직하게 되었어요. 어제 확정 되었구요. 다음주에 미국으로 떠나요.”
-뭐?
어차피 나는 신세준에게 일찌감치 들었던 이야기였다. 당연히 집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외마디 비명은 ‘내 것’ 이 아니었다. 나와 신세준은 아내를 쳐다봤고,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두 볼이 붉게 물든 아내는 나를 잠깐 봤다가 신세준을 바라봤다.
“왜... ?”
-왜가 어딨어요? ‘더 큰 곳을 향해 가고 싶다면, 기회가 왔을 때 꼭 잡아라!’ 이게 과장님이 저한테 항상 해 주셨던 말씀이잖아요?
“내가... 내가 그랬었나?”
-큭. 암튼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과장님. 정말, ‘여러모로’.
신세준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누가 들어도 ‘여러모로’라고 하는 말에 묘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내에게 그 말은 조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나는 손에 들린 맥주잔을 들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신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마치,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라고 나에게 통보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신세준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통보 문자’였다.
“세준씨,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나는 외투를 몸에 걸치며 아내와 신세준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연기엔 소질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죽을힘을 다해 미안한 표정을 얼굴 가득 그려내는 것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토해내는 것. 그 뿐 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
-그.. 그러게. 친구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하니. 원래... 친구가 많은 놈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누구?”
-어? 그.. 그.. 민식이. 초등학교 동창.
“민식...”
아내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왠만한 내 친구들도 다 꾀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기어이 나를 마중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손짓하며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럼, 저도 지금 갈까요?”
라고, 신세준이 맘에도 없는 말을 나에게 건냈다. 나는 물론이고 아내도 신세준을 바라봤다. 솔직히, 아주 솔직히.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진즉에 몇 번이고 연습했던 그 말을 꽤나 담백하게 토해냈다.
“음식이 저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조금 더 놀다가요. 뭐 괜찮으면, 우리 집사람 말벗도 좀 해주고.”
속이 쓰리다.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내를 보는 건 더더욱.
천천히 문이 닫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집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차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야 할까? 하지만 왠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키로 쯤 되는 거대한 ‘추’를 발밑에 잔득 깔아놓고 걷는 기분이었다.
“선배님!!”
그 소리에 나는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고개를 돌리니, 신세준이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신세준을 쳐다봤다. 그러자 신세준이 자기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내고 있었다.
“차 키?”
-네. 저기~ 모퉁이 돌아가시면, 제 차 있어요. ‘그 때‘ 한 번 보셔서 아시죠? 어떤건지? 큭.
“........... 근데 왜 갑자기 이걸 나한테.”-가보시면 알아요. 뭐, 바람 쐬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되구요. 그리고 휴대폰 꼭 켜놓으세요. 그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신세준은 다시 나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맙소사. 저 놈은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알고 저러는 걸까?
얼마쯤 걸었을 때, 신세준의 차를 발견하고 손에 들린 자동차 키홀더를 꼬옥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애꿎은 추억’을 되새기며, 천천히 녀석의 차 위에 올라탔다. 운전석 위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도 그곳에 아내의 땀과 은밀한 액체들이 뒤엉켜 묘한 향을 풍겨낼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뒷좌석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그제야 보조석에 놓인 ‘노트북’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가보시면 안다. 아마도 녀석이 말한 건... 나는 슬쩍 노트북을 열어 재꼈다.
‘이건... 무슨?’
노트북을 열자마자, 결코 익숙하지 않은 사이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들어봤던 기억이 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개인이 채팅창을 개설하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뭐 그런류의 사이트였다. 그런데 왜 이게?
[띵동]
바지춤에서 문자 착신음이 울렸다. 나는 단번에 그게 누구일지 짐작하고는 서둘러 바지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회원가입하시고 계세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아참, 인터넷이랑 노트북 배터리는 제가 다 알맞게 조정해 놓은 거니까, 왠만하면 보조석은 건드리지 마세요. ^^]
문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전화기를 슬쩍 내려놨다. 그리고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녀석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냥 느낌에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도착한 건, 얄궂게도 그 ‘음란한 놀이터’ 근처였다. 주위를 살피고 나는 천천히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녀석이 켜놓고 간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눌렀다.
“동의, 약관, 동의, 약관..... 다 동의한다고 썅!!!”
뭔 놈의 약관이 그리 많은지. 괜히 엄한 것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자판을 꾸욱꾸욱 누르며 천천히 내 개인정보를 완성시켜 갔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로그인을 했다. 플래쉬로 떡칠이 되어 있는 사이트는,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 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슬쩍 시간을 한번 확인했다. 이제 열 신가? 그리고 말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결국 또 나에게 돌아오는 건, 이 빌어먹을 기다림인가?
살짝 잠들 뻔 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나를 막아 세운 건, 자정쯤에 나에게 날라 온 녀석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그것을 읽었다.
[36번방. 비번은 3235 ^^ 아참. 혹시 모르니, 과장님께 문자 한 통 정도만 넣어주세요. ^^]
참 얄궂은 놈이다. 왜 하필이면 모든 번호에 아내와 나, 그리고 네 놈의 나이가 들어가 있냔 말이다. 나는 전화기를 슬쩍 내려놨다. 그리고 노트북에 살짝 손을 얹어 놨다. 하지만 어쩐지 쉽게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이것을 건드려야 할지, 어쩔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다음이란 없겠지. 나는 천천히 방 번호를 두드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인터넷의 영향인지. 약간의 대기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뭐야?”
-아, 음악 좀 틀으려구요.
“이상한 짓 하는거 아니지?”
-에이~~ 큭. 못미더우면 이리와서 보시던지요.
그건 아내와 신세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곳은 아내와 나의 침실이었다.
“후우. 여긴 안 돼.”
-왜요?
“왜요라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과장님 침대요.
“후우. 그래도 안돼.”
녀석과 아내는 가볍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틀어놓은 영상 덕분에 나는 그것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신세준은 어느새 팬티만 걸치고 있었고, 아내는 맨다리만 드러낸 채, 조금 커 보이는 티셔츠 하나만 달랑 입고 있었다. 이상하다. 저건 아내의 옷도, 내 옷도 아닌데?
“그래도 안 돼. 빨리.”
-후우. 잠깐 와 봐요.
“아이, 정말.”
신세준은 피식 웃으면서 아내의 입술을 훔쳤다. 아내의 행동을 보니, 그제야 아내가 제법 술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나가고 나서, 둘이 조금 마신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신세준은 아내와 정신없이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내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가볍게 잡고, 아내의 뒤통수를 내 쪽을 향하도록 살짝 잡아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신세준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브이’ 표시를 하고 있는 게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신세준의 ‘쩝쩝’ 거리는 소리만 듣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젠 체념인가? 혹시 이건 누군가 나에게 내리는 벌이 아닐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잠깐 방해를 하기로 마음먹고.
“어, 잘 도착했어?”
전화와 동시에 신세준의 품에서 일어서는 아내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결국 신세준의 품에 미끄러졌다. 아내가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신세준이 잡고 있는 탓인지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에선 그런 –당황한 표정의- 아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신세준은 무덤덤하게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보이는 화면에는 신세준이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며, 통화중인 아내의 맨 다리와 목덜미를 차례대로 주무르고 또한 빨고 있었다. 아내가 당황한 듯 신세준을 밀어냈지만, 술에 취해서인지 그게 뜻대로 되어 보이질 않았다. 그저 약간의 앙탈처럼 보일 뿐이었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신세준에 대해서 물었다. 내심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했지만, 결국 아내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한마디는, ‘아까 갔다‘라는 말 한마디였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꺄악!!!”
아내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영상에 신세준이 아내의 ‘못보던 옷’을 들추어내고 한손 가득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아내가 전화기를 한손으로 꼭 가리고 신세준을 노려봤다. 하지만 신세준은 그런 아내에게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멍하니 그걸 바라봤다. 그리고 더 이상의 방해는 필요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 쪽에서 먼저 ‘작별의 서’를 고했다.
“집에 들어가긴 힘들 것 같애. 여기 아주... 말 그대로 ‘초상’ 분위기거든.”
그건 마지막을 불태우려는 암컷과 수컷에게 내려진 시작의 신호탄이었다. 모든 금기를 깨버리는. 나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신세준은 아내의 손에 들린 전화기를 뺏어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당황한 아내가 뭐라고 하면서 반항했지만, 이미 신세준에 의해 자신의 몸이 침대 위에, 아니, 우리 부부의 침대 위에 눕혀진 후였다.
달랑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있던 신세준은 서둘러 아내의 박스티를 벗겨냈다. 반항 아닌 반항을 계속하던 아내도 결국 체념한 듯, 두 팔을 들어 신세준을 도와주고 나섰다. 예상대로 속옷 위에, 커다란 박스티 하나만 걸치고 있던 아내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브레지어와 팬티를 살짝 가리며 신세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녀석이 마지막으로 택한 건, 아내와 나의 침실이었구나. 나는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신세준의 정신없는 애무가 시작됐다.
목덜미부터 가슴, 배꼽, 허리, 허벅지, 다리, 발바닥까지. 나는 한동안 정신없이 이어지던 신세준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춤이라도 추든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는 아내를 보며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한동안 정신없이 아내의 발가락을 핥아대던 신세준은 정말 순식간에 아내의 허리에 손을 얹고 아내의 팬티를 아래로 잡아 당겨 내렸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내의 허리가 박자에 맞춰 살짝 위로 들렸다 바로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아내는 그렇게 신세준을 도와주고 있었다. 만족한듯한 표정의 신세준이 아내의 팬티를 코에 대고, 킁킁하며 냄새를 맡아댔다. 술에 취한 아내가 피식 웃으면서 하지말라며 공중에 헛손질을 해 댔다.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신세준은 아내의 팬티를 아내의 머리 위에 가져다 대고는 그대로 씌워버렸다. 아내가 다시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신세준이 그 손을 꼬옥 잡는 바람에 아내는 졸지에 자신의 머리에 자신의 팬티를 뒤집어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시 아내의 손을 붙잡고 있던 신세준이 서둘러 자신의 팬티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아내의 앙탈도 멈췄다. 신세준이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슬쩍 자신의 물건 쪽으로 가져다 대자, 아내의 손놀림이 부산해 졌다. 마치 무언가를 꾸욱꾸욱 주무르듯, 아내는 정성스럽게 그것을 어루만졌고, 신세준은 마치 승자의 그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멍하니 그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기어이 신세준이 나를 향해 눈을 찡긋 거리며 자세를 바꿀 때, 아내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위에 신세준의 물건이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안에서 가만히 입을 열었다.
“씩스티 나인.”
너는 항상 나보다 한발씩 앞서가는구나.
작은 노트북 화면을 타고 남녀의 게걸스러운 애무 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신음소리와 빠는 소리. 그리고 핥는 소리. 나는 볼륨을 내리지 않았다. 그냥 그것을 지켜봤다. 팬티를 뒤집어 쓴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아내의 두 허벅지를 힘껏 열어젖히고 그 사이에 얼굴을 박아댄 신세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자세를 고쳐잡은 신세준 덕분에, 아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내는 무슨 기분일까? 부부침실에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고 몸을 허락한 그 기분이란.
신세준의 물건이 아내의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세준은 아내의 젖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정신없이 애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은 아내의 이곳저곳을 스치듯 지나가다, 잘 벌어진 아내의 은밀한 부분에 들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의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어의 머리같은 엄지발가락이, 쉼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전희가 시작된 것이다.
한참동안 애무가 계속됐다. 신세준이 겨우 아내의 몸에서 떨어졌을 때, 아내의 몸이 여기 저기 붉게 물들어 있는게 보였다. 아내의 머리엔 여전히 팬티가 걸려 있었고, 목덜미엔 브레지어가 올라가 앙상하게 걸려 있었다.
“그럼, 넣을게요. 보자, 콘돔이.”
녀석은 스탠드가 있는 곳을 뒤적거리며 콘돔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아내가 신세준을 향해 '분명 뭐라고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작아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내가 얼굴을 노트북 쪽으로 들이밀어 봤지만, 아내는 또 말이 없었다. 다만 신세준은 나를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팬티를 뒤집어쓰고 있던 아내가 마치 나에게 얘기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그냥 해.”
그 한마디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신세준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기어이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 거리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 약속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선배님 와이프가 그냥 하라잖아요? 어떻게 해요? 별 수 없잖아요?’ 마치 녀석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관대한 척 마지막까지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진정한 의미로 아내를 탐한 건, 내가 유일하다는 얼척없는 ‘자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세준이 피식 웃다가 아내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들어갔을 때, 화면 가득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자그마한 노트북에는 아내의 일그러진 표정이 그대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신세준의 ‘맨몸’이 그대로 아내의 몸에 들어갔을 때, 신세준은 아내의 몸 위로 가볍게 포개어지며 다시 한 번 곁눈질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곤 피식 웃더니 이내 주섬주섬 손을 들어 나를 향해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마치 그것이 출발신호인 듯, 아내의 몸 위에 미끄러진 신세준은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거의 동시에 아내가 신세준의 허리에 자신의 두 다리를 가져다 교차 시켰다. 발가락은 문어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커다란 엄지발가락이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아내의 목덜미를 파고들던 신세준은 그제야 아내의 브레지어와 팬티를 완전히 벗겨내 다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두 신체가 만나 만들어내는 파열음이 상당히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후우.. 힘들어. 후우. 과장님. 이번엔. 올라오세요.”
그렇게 말하던 신세준은 아내의 입술을 탐했다. 가만히 신세준의 혀를 받아들이던 아내는 천천히 신세준의 밑에서 빠져 나왔다. 올라오세요. 올라오세요. 나는 신세준이 말한 그 걸 멍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신세준의 몸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승위. 애석하게도 아내와 나눠봤던 체위가 아니다. 결국 나는 아내와 나눈 체위도 몇 개 없었구나. 아니 그것보단, 내가 한 거라곤, 녀석과 아내가 나눈 체위를 보고 그걸 그대로 따라한 게 고작 아니었을까?
신세준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아내는, 머리를 늘어뜨린 채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여 댔다. 그 육감적인 허리와 엉덩이가 신세준의 몸 위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릴 때마다, 아내의 살결이 묘하게 흔들렸다. 아내는 오직 신세준의 두 손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채, 때론 허리를 꼿꼿이 폈다가, 그리고 때론 신세준에게 애원하듯 가슴에 풀썩하고 엎드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그 강렬한 허리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후우.. 흐으.. 다.. 다시, 제가 위로 갈게요.”
정신없이 움직이는 아내를, 이번에도 신세준이 막아 세웠다. 아내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다리를 벌린 채 옆에 누워 버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신세준이 다가가 그 손을 풀어 버렸다. 얼굴이 벌개진 신세준이 다시금 나의 눈치를 봤다. 그냥 해라. 그냥 해라! 이 개 자식아!!!
아내의 발목을 움켜쥔 신세준이 가볍게 쉼호흡을 내 쉬었다. 그러자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신세준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결연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직감적으로 이제부터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그런 예감은 천천히 들어맞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