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6
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6
“어.... 안녕하세요?”
여자는 나를 보고 잔득 놀란 눈치였다. 나는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자의 표정으로 말미암아 보건데, 지금 내 표정이 맘처럼 쉽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략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의 손을 꼭 쥐고 있던 그 여자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네?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대화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관절 왜 네가 여기에 있느냔 말이다.
“그.. 쇼핑하기에 참 좋은 날...”
-그..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
“그런데, 출장 가신다고 했잖아요? 우리 와이프랑..”
정말 논리적인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일까? 이미 나는 내가 원하는, 아니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을 여과 없이 상대방에게 던졌다.
“아..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요.”
옆에 남자 끼고 돌아다니는 게 사정이란 말이냐? 아 사정... 사정... 그 사정 말고... 그 사정... 아하..
하지만 금새 여직원은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 표정은 마치 왜 그걸 네가 모르느냐는 것처럼 보였다.
“와이프가 아까 걱정 많이 했는데. 전화가 안 된다고.”
-아 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전화가 안 돼서요. 어떻게든 과장님께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따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서.
그러니까 얘는 보기보다 참 개념이 없어 보였다. 다분히 사적인 감정이 녹아 들어가서인지는 몰라도, 애가 앞뒤가 없다. 그걸 대답이랍시고 나한테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무려 네 회사, 상사 남편인데.
“그래도 결국 과장님께 연락드리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뭐야 그게 다야? 암튼 나는 짜증이 났지만,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며 그 여직원의 말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그랬구나. 와이프가 바쁜지, 아까 몇 시쯤에 전화하고는 따로 연락이 없어서요. 나는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 있었죠.”
-아. 그러셨구나. 죄송합니다. 정말.
잔득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여직원이 내뱉는 그 죄송합니다가 곧이곧대로 사과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내의 생각이 간절했다. 그럼 지금 혼자 내려간건가?
“그럼.. 전 이만.”
인사를 건내고 여직원이 나를 쳐다봤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나와 여직원을 쳐다보던 남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다가 여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음? 아 잠깐. 난 아직 듣고 싶은 게 남아있는데. 나는 혹시, 설마, 하악. 하는 마음으로 여직원을 불러 세웠다.
“아.. 저.. 저기.”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와이프한테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요. 그럼. 와이프는 혼자 출장을 내려간 건가요?”
내 질문을 받고 여직원은 조금 멈칫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겠다. 그냥 잠깐 자리에 멈춘 것뿐인데,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하지만 여직원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나를 보고 정확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세한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까 과장님한테 많이 혼나구, 당황하고 있다가 마침 신대리님한테 연락이 와서요.”
-누구요?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신대리. 신대리?? 신대리라면??
“아. 모르시나? 저희 회사 신세준 대리님이요.”
걔가 왜, 너한테 전화를 했을까? 아니 것보다, 방금전까지 전화가 고장났다고 했잖아.
“그... 전...”
-그래서 신대리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더니 알았다고... 전화를 끊으셨거든요. 자세한 건 전 모르구요.
“그러니까, 아까 그 전화...”
-과장님한테 연락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저도 잘 몰라서. 아무튼 전 그만 가볼게요. 그럼 안녕히.
이런 개념없는 년이 있나. 사사건건 내 말을 잘라먹어. 쳐 뒈질라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엉덩이를 흔들며 마트를 빠져 나가는 여직원을 바라보며 나는 서둘러 바지춤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시간은 8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고, 역시나 아내에게선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자동차의 엑셀을 꾸욱 밟았다. 마트를 빠져 나온 건, 여직원과 헤어지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바로 직후였다. 물론 아내는 받지 않았다. 자동차를 어딘가로 계속 몰면서 머릿속엔 끊임없이 이상한 생각들이 파고들었다. 물론 그 생각들의 몇 할 이상은, 신세준과 관련된 아주 나쁜 상상들이었다. 그럼에도 결코 아내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연락만 왔었다고 했으니까.’
여직원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걸로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부질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온갖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의 감독과 각색을 맡은 건 물론 나였고, 거기에 출연하는 배우는 신세준과 아내였다. 그리고 나는 카메오라도 거기에 출연할 수 없었다.
“아아아악!!!”
겨우 집에 돌아와 나는 침대에서 크게 소리쳤다. 후우. 도저히 모르겠다. 화가 나는 건지 뭔지. 후우. 진정을 하려해도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10시쯤 되어서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크게 쉼호흡을 하고 천천히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와이프다.
“자고 있었어?”
-아니. 뭐. 그냥.
“후우. 일이 겨우 끝났어. 계약건도 겨우 마무리 됐고. 후우.”
-다행이네.
사실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게 아니었으니까. 따로 있었으니까. 나는 그냥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내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하지만 그 기다림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우. 이제 끝나고 회식하러 갈 거야.”
-회식..
“응. 뭐 그래봐야 간단하게 식사하고 노래방이나 가겠지. 여기에 있는 분들 나이대도 그렇고. 다 아저씨들이잖아.”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응. 아 맞다. 그것보다.”
-어.. 어..
“아까 하려다 만 말이 있는데. 나 결국 은지씨를 못 만나서.”
-어.
“........ 어? 별로 안 놀라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트에 갔던 이야기와 거기서 여직원을 만났던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아내에게 보고했다. 물론 신세준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부러 빼고서.
“아, 그랬구나. 흠.”
-참... 보기보다 개념 없다, 걔. 그지?
“뭐, 그냥 그러려니 해. 애는 착한데. 가끔 생각이 없을 때가 있긴 해. 후우. 뭐 그래도 계약은 잘 마무리 지었으니까.”
분명 똑같은 실수를 남자 직원이 했다면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뭐랄까. -상당히 대조적으로- 여자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부분이 있었다. 나는 잠시 침을 꿀꺽 삼키고 서둘러 아내에게 물었다.
“그래서... 혼자 간 거야? 그 먼데까지?”
-아 그게. 사실 아까 말하려고 했던 게 있는데.
시작된다. 아내의 고백. 나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아내의 말을 들었다.
“그게, 사실 그 여직원 대신 남자 후배랑 같이 왔어.”
-남자... 후배?
“응. 당신도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신세준 대리라고.”
당황스럽기 보다는 어쩐지 마음이 진정이 됐다. 왜 일까. 설마설마 했었고, 온갖 나쁜 상상을 하게 만든 주범인데. 하지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놈의 이름을 무덤덤하게 얘기하고 나서는 아내의 태도였다. 그러니까... 그 ‘강간‘을 당한 여자치곤 어쩐지.
“아.. 기억나는 거 같아, 누군지. 근데 그 분이 왜?”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후우. 여직원이 안 오길래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조금 기다리니까 걔가 오더라고. 후우.
‘걔’야 ‘개’야?
“맘 같아선 그냥 혼자 내려올까 했는데, 막상 오늘 하루 정신없이 지나간 거 생각하면, 후우 역시 두 명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내 몸을 감쌌다. 차라리 아내의 입에서 끝까지 그 자식의 이름이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내 의심은 혼자 커졌을 것 이다. 하지만 정작 너무나 싱겁게 아내의 입에서 그 자식의 이름이 흘러나오니, 어쩐지.... 맥이 빠진다. 뭐지? 이 지랄 맞은 감정은?
“암튼, 나 나가봐야겠어.”
-아.. 벌써?
“응. 밖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거든.”
-몸 조심해.
“....... 어? 뭘 조심하라고?”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미 난 제대로 된 연산을 할 수 없다. 그 곳에 아내와 신세준인가 뭔가 하는 놈이 같이 있다는 걸 안 이후로는 말이다.
“그냥, 환절기니까. 감기도 조심하고.”
-싱겁기는. 암튼 내일 봐. 그럼. 잘 자고.
아내의 태도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그 것 같았다. 전화기를 간신히 손에서 내려놓고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내는 왜 이렇게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은 걸까? 녀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의 아내는 정말 ‘괴물’ 같았다. 개한테 물렸다고 말한 아내의 제 1 순위는 역시나 일일까? 일 때문에 그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내 물건과 과장님의 그곳이 비에 젖어서 너무나 쉽게... 너무나 쉽게 들어갔어. 별다른 애액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상황에서 나는 바보같이도 신세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아이러니 한 건, 그 상황에서 내 물건이 반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도덕적으로 나를 비판한다면 정말 할 말 없는 상황이지만, -나름 자기변호를 하자면- 이건 도덕적인 접근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결코 싫지 않은 그 흥분을 느끼며 침대위에 천장을 보고 천천히 누웠다. 그리고 바지 안으로 나의 손을 밀어 넣고, 이미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내 물건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자윈가?’
내 마지막 자위가 언제였지?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가끔씩 관계를 거절당했을 땐,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정말 간간히 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너무 흥분이 된다. 너무나 바보같고 병신같지만, 그 자위의 주체는 성인잡지의 헐벗은 모델도 아니었고, 300메가 남짓한 짧은 양동속의 포르노 배우도 아니었다. 그 주체는 다분히 나의 아내였다.
“으...윽..”
한참을 내 물건을 잡고 문질렀다. 그리고 사정의 순간이 임박했을 때, 거짓말처럼 신세준이 내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었어. 나는 그대로 과장님의 가슴을 훔쳐보며 정확하게 그 위에 나의 흔적들을 흩뿌렸지.’
“윽!!!”
외마디의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손바닥과 손가락을 타고 뜨겁고 진득한 감촉이 느껴졌다. 물건에서 더 이상의 반응을 느낄 수 없게 되자, 나는 나른함을 느끼고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인 휴지를 한 손으로 집어 들고 서둘러 몇 칸을 잡아 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