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2
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2
“학.. 학..”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엘리베이터를 탈걸. 고작 4층이라고 생각했던 게 패착이었다. 썅!! 숨 차!
어쨌든 나는 조심스럽게 아까 내가 서 있었던 자판기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차마 그 쪽으로 고개를 밀어넣지도 못하고 귓구멍만 벌렁거리며 서 있었다.
“..................”
건너편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결국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슬쩍 자판기 너머를 쳐다봤다. 하지만 역시나, 그 정체모를 남자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서둘러 흡연실에서 빠져 나왔다.
어디에 있을까? 그 둘은 어디에 있을까? 보여라. 제발 내 눈에 띄어라. 만약 찾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너희 두 놈을 죽여주마.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네 두 놈의 시체를 찾을 수 없을거야. 왠 줄 알아? 내가 니놈들 시체를 와작와작 씹어 먹어 버릴테니까............... 너무 멀리 나갔다. 얼마전에 DVD도 올드보이를 빌려보는 게 아니었다.
암튼 나는 정체 모를 남자를 조심스럽게 찾았다. 제발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사무실로 돌아간 건 아닐까? 하지만 직감적으로 그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의 ‘발정난 개‘처럼 숨을 할딱이며 이야기를 재촉했었으니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다니지 않게 된 교회 목사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보여라, 제발 보여라.
그리고 얼마간의 기도 후에, 정말 거짓말처럼 복도 끝을 슬쩍 걸어가고 있는 두 명의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레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저 놈들이 그 놈들이라고. 나는 확신에 차서 그 두 놈을 따라 걸었다.
미행에 소질이 없는 내가, 그것도 내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에서, 낯선 남자 두 놈을 따라 걷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려 고맙게도, 녀석들은 얼마가지 않아 한적한 복도 어디쯤에 서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라도 된 것 마냥 그들을 등지고 최대한 각진 구석에 몸을 숨긴 채 귓구멍을 열었다. 눈이 튀어나올라 눈을 이리저리 굴려 동태를 살피니, ‘발정난 개‘는 또 다른 녀석의 팔을 붙잡고 무언가를 애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다른 녀석은 주위를 연신 살피더니 슬쩍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건 누가 봐도 먹이를 주는 주인과, 그것을 받아먹으려는 개의 형상이었다.
“그러니까 말야, 어제 출장 다녀왔잖아.”
-그렇지, 어제 중요한 출장이었잖아. 갑자기 계약에 차질이 생겨서 과장님이랑 너랑 당일치기로 갔었잖아. 설마...
그제야 어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오후 몇 시쯤,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떠올렸다. 그 땐 나도 바빠서 듣고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아내가 나에게 남긴 말은 고작, ‘출장’ 이라는 단어와 ‘늦을지도 모른다’ 는 문장 하나였다. 내가 캐치하지 못한 건, 남자직원이랑 같이간다는... 그거 하난가?
“어. 과장님이 하도 다급하다 하셔서 진짜 전속력으로 액셀 밟고 달려갔잖아. 그게 참. 당시에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람이 몇 명 없었잖아? 그러니까 이대리님은 출장가셨고, 김대리님은 조부모님 돌아가셔서 회사 안오시고. 후우. 정말 그땐 ‘좆됐다’ 생각했는데. 하아. 그게 기회가 될 줄은 정말...”
-어.. 어떻게?
그래. 어떻게 된거니?
“암튼 계약 건 때문에 현장까지 갔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까 이건 상황이 더 심하더라고. 그러니까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페스티벌 무대 기획 건 있잖아? 돈이 엄청 깨지는...”
-그러니까, 서론 좀 생략하고... 어떻게...
“좀 들어봐.”
그래.. 좀 들어봐, 이 발정난 멍멍이 새끼야.
“암튼, 과장님이랑 현장에 가니까, 작업하던 인부들이랑 현장 담당자가 비 맞으면서 셋트를 다 치우고 난리도 아닌거야. 그 쯤 되니 나도 다급해서 우산 쓰고 현장 담당자한테 달려가는데, 과장도 다급하긴 어지간히 다급했던 모양이야. 비에 몸이 홀딱 젖는 것도 모르고 담당자한테 뛰어가서 컴플레인을 넣는데, 후우. 하긴 그러니까 그 나이에 벌써 과장딱지 달았겠지만.”
-홀딱 젖었겠네. 어제 비도 많이 왔는데.
“과장님 곁에 다가가서 우산을 씌워 드려도 소용이 없는 게, 비가 너무 오니까. 나도 그냥 묵묵히 과장님이랑 현장담당자가 얘기하는걸 듣기만 했지. 근데 이게, 사람들이 좀 너무하더라고. 계속해서 지네 입장만 고수하다가 결국에는 셋트를 다 철수하지도 않고 그냥 가버리는거야. 니네가 다 알아서 해라 뭐 이러면서.”
-하여튼 개새끼들. 도대체가 갑과 을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이 새끼들은.
개새끼가 개새끼를 향해 개새끼라 부르짖고 있었다.
“암튼, 과장님이 끝까지 막아 세웠지만, 결국은 다들 돌아가고 비 맞으면서 과장님이랑 나만 덩그러니 현장에 남게 된거야. 빌어먹을 비는 계속 내리고 후우. 그쯤 되니, 부하 직원 된 입장에서 비 맞고 서 있는 과장이 딱해 보이기도 했고, 어쩐지 좀 측은해 보이더라고. 비에 홀딱 젖은 꼴이 안 되어 보이기도 했고, 어쨌든 여자잖아. 그냥 나도 우산을 쓰윽 내려놨지. 후우. 비가 유독 더 차갑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바로 모텔로 갔어?
“모텔?”
뭐? 뭔 텔? 이런 멍멍이 자식이, 지 맘대로 스토리 각색하고 있어. 넌 저~~기 가서 뼈다귀나 입에 물고 있어 임마!!
“모텔을 왜 가?”
-왜 가다니? 원해연 과장이랑 했다며? 뭐야, 구라야?
“했지.”
-엥? 어디서.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음... 섹스를 하기는 했는데, 모텔은 가지 않았고. 그리고 비는 내리고... 그럼 뭘 어디서 뭘... 그... 후우.
“............. 그냥 거기서.”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최대한 들키지 않게 복도에 서 있는 남자 두 놈을 쳐다봤다. 그제야 그 두 놈이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저건 분명히.... 그...
“그러니까, 빨리 말해봐 답답해 죽겠어. 신대리.”
신대리.. 신대리... 신세준... 분명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 본적이 있을 뿐인데 녀석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신세준. 그건 분명 와이프의 업무 파트에 낑겨있는 대리놈이다. 그럼.. 아내와 저 놈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몇 번이고 정을 통했단 말인가?! 후우. 정.. 정이라. 표현이 좀 고루하... 아이 썅.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다시금 숨을 죽이고 녀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는 여자더라고.”
-거기서 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냥, 뭐랄까. 비 맞고 서 있는데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으니까, 마음이 동하더라고. 정말 그때까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니까 직장 상사를 대하듯, 그냥 곁에 가만히 다가가 섰지. 그냥 눈치 보면서. 그러다가 슬쩍 과장님 어깨에다가 손을 올려놨는데.”
-맙소사.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그 가시 같은 여자한테...
“뭐,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뭐가 되긴 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냥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었거든. 아닌 게 아니라, 손바닥을 타고 과장님이 흐느끼는게 느껴지더라.”
-뭐 빨리 치워!! 뭐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
“응.”
-신기하네.
그래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나 이외의 남자에게 –극도로 예민하게 보일 정도로- 일체 스킨쉽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어느 정도냐면, 맞다! 그러니까 그저 인사치레 정도의 악수라 할지라도.
“근데 하필이면 말야.”
-어.
“거기서 봐버린 거야.”
-뭘?
“비에 젖어버린 여인의 적나라한 굴곡을.”
-후우.
참으로 고풍스러운 표현이로구나.
“끄... 끝내주잖아. 원.. 원해연 과장. 바디라인이야, 남자들끼리 술자리 가지면 꼭 나오는 얘기고...”
-응. 근데 생각보다 가슴은 작더라.
“앙? 만져본거야 그 때? 그 큰 가슴을?”
-그럴 리가 있나. 그냥 훔쳐 본거지. 사실 훔쳐봤다기보단, 보이니까 봤을 뿐이지만.
옳거니!! 그럼 네 눈을 뽑아 버리면 되겠다!!
“앙? 근데, 만져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리고 작았어? 원과장님 가슴, 제법 큰 걸로 유명한데?”
-그게, 큭..
“왜 웃어?”
-아, 이게 웃긴 게. 상황이랑 좀 안 맞는 일이 있었어.
“뭔데?”
-나도 남자니까 본능적으로 여자 가슴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잖아? 원과장님 가슴 큰거야, 알고 있는 일이었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러니까, 빗물에 젖어서는 과장님 몸에 늘러 붙어있는 그 하얀 셔츠를 훔쳐보니까, 뭔가 좀 이상한거야.
“도대체 뭐가?”
-그러니까, 가슴 한 쪽이 상대적으로 홀쭉한거야. 이렇게 푹 꺼져서.. 이렇게..
신세준은 자신의 손을 가슴쯤에 가져다 대곤 묘한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런 얘기였구나. 그럼 뭐. 사실, 와이프의 가슴은 큰 편도,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라고 본인 스스로가 늘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내 보기엔 전성기 서재응의 칼제구로 정확하게 제구된 꽉 찬 B!! 정도 되지 않나 하는 간단한 소견을.....
나는 다시 신세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뭐야 그게? 무섭게.”
-큭. 이상해서 스윽 보니까, 아 글쎄, 그 있잖아, 인조 가슴 모형..
“뽀옹~?!”
-응. 그게 배꼽 부분까지 스윽 하고 내려가 있는 거야.
“그럴수도 있나?”
-뭐, 나야 모르지. 단단하게 고정하지 않는 이상 그럴수도 있지 않나, 하는 추측만 하는거지.
“에이 뭐야. 원과장님 가슴 그거, 구라였어?”
애석하게도 그건 구라가 맞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부연설명을 하자면, 내 아내는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그리고 승부욕도 어마어마한. 아내의 부풀어진 가슴은, 뭐 말하자면 그런 결과다. 여성으로써의 성적인 매력에서도 결코 남들에게 뒤처지길 원하지 않는 뭐 그런. 그런데 어쩐지 내가 좀 이상하다. 이게 분명 화가 나야 하는데... 묘하게 별로 화가 나질 않아.
“근데,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작은 편도 아니었어. 손바닥에 꼬옥 잡혀 말려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아.. 그렇구... 뭐야. 결국 만졌다는 거잖아?
“섹스를 했는데, 가슴을 안 만졌겠냐?”
이마위에 구슬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게임으로 들어가는건가? 신세준은 다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과장님이 우는거야 안된 건 안된건데, 젖어있는 몸을 보니 반응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그거야 그런데, 뭘 그렇게 서럽게... 하긴. 원체 지는 거 싫어하는 여자잖아?
“응. 뭐, 이번 페스티벌 건도 본인이 무리하게 진행한 탓도 있으니까. 아까 사장실 불려간 것도 사실 그거 때문에.”
자초지종을 알게 되니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후우. 난 고작 내 생각만 하고는..
“암튼, 비에 젖은 원과장은 계속 울기만 하더라고. 난 원과장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채 원과장의 젖어있는 몸을 구석구석 훑다가도,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 주위를 살폈지. 혹시나 아까 그 사람들이 또 올까 하고 말야.”
-에이. 그 바닥 사람들 습성이야 잘 알잖아? 다시 올 리가 있나? 이미 수 틀렸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
-........... 그럼... 정말 거기서...
나는 신세준의 목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니까. 하지만 신세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지막한 한 마디는, 나를 다시금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난 말야. 그 순간 그냥... ‘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