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47화
야화 47화
"너희 둘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더듬더듬 기어 올라간다는 말이지?"
듣고 있던 모두가 와아 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재화를 집어 날라야 할 거지들이 세 고을에서 모두 모여 들었으니, 그 수만 해도 백 명이 넘었고, 육두자 외에 여섯 명도 끼어 있었다.
"호호호... 낮에 가야 할 것을 그랬지? 빗발치는 화살에 맞아서 거꾸러지는 꼴을 보았을 텐데"
"히히히...어두워져서야 올라간다는 의미는 알았다 서서히 출발을 하자"
"육두자는 여기 남아서 나머지 여섯 사람과 여기를 지키도록 하시오. 나라면 여기를 몰래 치도록 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돌지도 의문이오. 만약의 경우에는 여기를 포기하고 죽림 안으로 몸을 피하시오. 집은 새로 지어도 되지만 사람이 죽고 나면 다시 살려 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알아 들었소?"
"주군! 사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강호일정! 앞장 서시오. 그리고 개방 제자들은 반시진 후에 여기를 출발 하도록 하여라"
네 사람이 산책이나 나선 것처럼 밤길을 재촉하여 태산에 있는 녹림으로 올라가는 길목까지 왔다. 파수꾼이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기겁을 하고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화살 끝에 화약을 매달고 거기에 불을 붙여 쏘아 올린 것이다.
하늘에서 불 꽃이 터졌다. 그 때 함녕 공주가 한뼘 정도 되는 우산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동굴 안 금궤에 구슬과 함께 들어 있던 노리개 같던 우산이었다.
우산이 활짝 펴지면서 거기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손전등을 하늘에서 내리 비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 될 것이었다. 이쪽에서는 십장 앞을 환하게 내다 볼 수 있는 반면 저 쪽에서는 이 쪽을 눈이 부셔서 보지 못 하는 형국이 되었다.
두 사람이 사천왕 심법을 운용하여 천 풍림이 우산에 양전(陽電)을 쏘아 냈다. 입구에 설치 해 놓은 초소가 빛 안에 비추자 공주가 음전(陰電)를 거기에 쏘아 올렸다. 양전과 음전이 부딪치면서 번쩍 번개가 내리치면서 우르릉 뇌성이 울리고 초소는 흔적도 없이 박살이 났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 쪼이는 범위는 벼락을 맞는 것이다. 이것이 증장조화(增長造化)라는 풍운조화를 일으킨다는 초식이었던 것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적도들만이 놀란 것이 아니라, 따라 나선 취아선과 강호일정이 더 놀라서 그들 뒤 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총채까지 올라가는 시오리 길에 초소가 다섯이 있었는데 다섯 개 째 가 박살이 났을 때에는 이미 녹림의 무리들은 나 살려라 하고 산을 타고 넘어, 뒷길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총체의 성곽 문이 번쩍하는 낙뢰(落雷)와 함께 우르릉 쾅쾅 소리가 나며 박살이 났을 때는, 이미 성채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안았다.
뒤따라 온 개방 제자들이 금은 재화와 쓸만하고 값나가는 것들만 골라서 집어 들고 산길을 내려 간 후, 총채 안 여기저기에 벼락이 떨어지며, 남아 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때 아닌 천둥번개가 치고, 불타오르는 태산 정상의 불길은 제남과 장안 장청에서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조화라는 것을 안 몇몇 사람들은 제절로 경외지심이 울어 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농담 몇 마디라도 던졌을 취아선이, 육두주점으로 돌아 와서까지 함구를 하고,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놀랐는지 알만 한 일이었다. 훗날의 일이지만 이 날의 사건은 두고 두고 여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 되었으며, 여명부와 석양부의 전설이 이루어 낸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태산의 녹림 총채가 밤새껏 불타 오르는 광경을 본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더군다나 뇌성벽력이 치고 낙뢰가 녹림 총채를 쑥밭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은 며칠만에 전 무림으로 터져 나갔고, 반신반의하는 자들도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취아선은 함구를 하고 있었고, 현장을 본 강호일정만이 혼자 영웅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몰려든 사람이 여기저기서 질문을 던지면, 곡 원달의 기상천외한 답변이 이어졌다.
"사람이 어찌 천둥 번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오"
"무식한 양반!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내가 전하는 것 뿐이라오. 본래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동쪽을 담당한 지국(持國) 마례청(馬禮靑), 서 쪽을 담당하는 광목(廣目) 마례해(馬禮海) 남쪽을 담당하는 증장(增長) 마례홍(馬禮紅) 그리고 북쪽을 맡은 다문(多聞)마례수(馬禮壽) 네 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중 적면(赤面)인 마례홍은 손에 우산을 들고 있으며, 정(正)은 어둠이고 반(返)은 번개와 우레를 일컬음이라오. 그 증장천왕의 절기가, 전설의 도끼 석양부와 여명부에 녹아 들어, 석양 부는 음전(陰電)을 발하고 여명부는 양전(陽電)을 발생하여 천둥 번개를 내려치게 된 거이오! 알아 들으셨소?"
"호호호... 대단한 학식이네요?"
언제 나타났는지 듣고 있던 공주가 한마디 하고 그 자리를 뜨니, 그만 그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만 셈이 되었다. 유가신공이 엉뚱하게 음양부의 전설로 둔갑을 한 것이다.
공주를 알아 본 몇몇 사람은 목례로 인사를 하는데, 공주 또한 목례로 받으며 미소로 답하였다. 도도하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처신은 모두의 인기를 독차지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어려워하여 감히 접근을 하지 못 하였다.
오직 한 사람 위대 하신 취아선만이 마구 대하는데, 그 취아선 마져 녹림의 일이 있고 나서는 한 발 양보를 하고 있었다. 그런 때 어려운 손님 두 사람이 찾아 왔다.
돈불선(豚佛仙)과 죽도선(竹道仙)이 찾아 온 것이다. 명호처럼 돈불선은 살이 돼지처럼 뒤룩뒤룩 쪄서 어디로 굴러 갈지도 모를 것 같았고, 죽도선은 대꼬챙이처럼 말랐는데 키만 훌쩍 컸다. 거기에 콩알만한 취아선 세 사람이 무림삼선인데, 이러한 부조화한 모습 때문에 삼선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썩 드물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 되었고, 이들 세 사람을 본 모두는, 모두가 다 피식거리며 웃음을 참아 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여명황 이라는 천 풍림이올시다. 내자인 석양봉 입니다"
함녕공주는 가볍게 머리만 숙였다. 공주라는 신분과 무림인 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지키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공주라는 신분을 아주 버릴 수 없는 까닭은 황실의 체면 때문이었지, 자신의 체면을 내 세우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청죽루의 동쪽 구석방인 영빈청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고 손님을 그리로 안내 하였으며, 청죽루에 발을 디디지 않던 취아선도 이 날만은 영빈청으로 따라 올라 왔다.
"황실의 체면 대문에 많은 눈이 있는 자리에서는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했습니다.함녕이라고 합니다"
삭삭한 함녕 공주의 인사에 오히려, 돈불선과 죽도선이 당황을 하였다. 무림 명숙(名宿)들이기는 하였으나 대명의 백성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히히히... 타불이고 수불이고 체면 따질 것 없다. 내 계수씨라면 너희들 계수씨도 되고 내 아우라면 네 놈들 아우도 되는 것이니, 막 대해도 되느니라"
"호호호...콩알만한 찰거머리 시숙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데, 돼지 같은 시숙과 말라깽이 시숙 두 분이 합세를 하였으니, 앞 날이 걱정 될 뿐입니다"
"헛헛헛... 면전에서 돼지 시숙이란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으니, 나도 이제는 성불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헛헛헛..."
"다른 놈 같았으면, 말라깽이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 전에, 황천 구경을 하고 있을 것이네"
"그런데 왜 저만 예외지요?"
"끄끄끄...계수씨를 때려 죽일 수야 없는 것이지"
"두 분 노 형님께서 너그러이 봐 주셔서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아미타불...감사는 나중에 하고, 이번 일이 어찌 된 것인지 그 전말이나 들어 보자"
취아선이, 여명부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이 여인이며 연왕부를 들랑거렸다는 것부터, 태산자락에서 천 풍림을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기 시작을 하였다. 술과 고기가 들어 온 것을 기회로 공주와 풍림은 슬며시 자리를 떴다.
무림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소림과 무당 개방의 세 사람이 모처럼 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도 많을 것이며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