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41화
야화 41화
군사(軍士)가 동원 되고, 병자의 집에는 금줄이 쳐지고 출입이 통제 되었다. 사람들이 고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고을 안으로 들어 오지도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40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함녕 공주와 나는 일일이 한집 한집을 돌며, 모든 사람들을 진찰하고 조금만 열이 있는 것 같으면 즉시 격리를 시켰다. 병자가 입고 있는 옷이나 금침은 모두 꺼내 불 지르게 하고, 모자라는 식량이나 필수품은 위소(衛所)에서 병사가 운반해 오도록 하였다.
병자가 발생 한 것은 열 한집에서 서른 명이 넘었다. 한집에서 세 명 꼴로 발병을 한 것이다. 병균의 잠복 기산이 사나흘에서 보름 정도이기 때문에, 그 마을에서 겨우 풀려 날 수 있었던 것은 두 달 가까이 걸린 4월 하순이었다.
발병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 하였고, 병사들이 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달 가까운 시일이 필요 했던 것이다. 마마(媽媽)라고도 하는 천연두(天然痘)는 그 전염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은 병으로, 예방법이 없던 당시로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는 없었다.
새 의류와 의복이 각 집마다 배급 되고, 입고 있었거나 덮었던 금침은 모두가 불 태워졌다. 공주의 신속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이 역병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공주 스스로가 위험을 무릅쓰고 병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찰하고 격리해 가며 두 달 남짓을 버텨 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함녕 공주의 성가는 하늘을 찔렀다. 황궁의 대신들도 뒤 늦게 공주의 선행을 알고 칭송이 자자했으며 포상을 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빗발쳤지만, 영락제는 이 상소문을 모두 물리쳤다. 공주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덥고 어찌 마음 든든하지 않았으랴.
"너라는 아이는 갈 수록 사람을 반하게 하는구나"
"그럼 밀월 여행을 갈 일만 남았네?"
"히히히...지금 밀월여행을 나온 것이 아니더냐? 달 덩이 같던 얼굴이 반 쪽이 되었구나"
"호호호... 그럼 반달이야"
"아니다! 그믐 달이다! 조금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
홍택호(洪澤湖)는 다섯 개의 담수호 중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이다. 크기 순으로 본다면 파양호(鄱陽湖) 동정호(洞庭湖) 태호(太湖) 순이며 소호(巢湖)가 그 중에서는 제일 작다. 홍택호(洪澤湖)에 인접 해 있는 홍택이라는 시진에 들어서기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섯 명의 수하를 거느린 장수가 공주를 맞이하였다.
"내안 고을에서 고생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 안으로 들어 가려고 해도 엄하게 통제 되어 들어 갈 길이 없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걱정을 하게 했군요. 어디 조용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앉아서 사냥을 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번잡한 객잔(客棧)이나 반점(飯店)보다는 그 동안 아씨를 기다리던 숲속이 조용 할 것 같아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거 잘 되었군요. 그리로 가 봅시다"
산자락 숲 속에 아늑한 자리를 잡아 놓고, 그 동안 거기에서 기다리며 노숙을 한 흔적이 역력 하였다.
"그 동안 이 자리에서 노숙을 하였단 말이에요? 내가 준 노자가 모자랐나요?"
"아닙니다. 함부로 쓸 수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은 노숙이 익숙해서 이 쪽이 편했습니다"
"그것은 잘못이에요. 나를 의지 해 온 수하를 그 정도 밖에는 돌보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에요"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씨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분투를 하고 계시는데 수하 되는 사람들이 돕지는 못할 망정, 호의호식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더 길게 말 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요. 어디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해 볼까요?"
"이 사람이 발산자(拔山子) 힘이 장사고 도끼를 무기로 쓰고 강궁(强弓)을 쓰기도 합니다. 다음이 비천자(飛天子) 하늘을 난다고 할 만큼 경공이 빠르고 비도(飛刀)가 장끼입니다. 그 다음이 산판자(算板子)로 셈이 밝으며 산판 알을 암기로 씁니다. 다음이 쾌도자(快刀子)로 도(刀)를 무기로 쓰는데 요리를 잘하여 앞으로 아씨의 식사를 전담할 것입니다. 그 다음이 수상자(水上子)로 물에서는 못하는 짓이 없으며 노(艪)나 봉(棒)을 무기로 씁니다 마지막으로 취어자(取魚子)는 한마디로 어부나 같은데, 투망을 무기로 씁니다"
"호호호...믿음직스럽군요. 그럼 그대가 여섯 사람의 우두머리이니 육두자(六頭子)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따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도록 해요"
"우선 제가 준비해 놓은 요리를 맛보셨으면 합니다"
모닥불에 불을 붙이고, 사냥을 한 고기를 산채와 함께 볶기 시작을 하였다. 모두가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았다.
"한 사람도 가솔이 없나요?"
"예 모두가 혈혈단신(孑孑單身) 입니다" "앞으로 가족을 갖도록 해야 하겠군요"
"산판자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매일 싸움판에 나서는 것도 아니고, 무위도식(無爲徒食)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수하들 급료 백 년 치를 선불하신 셈 치시고 좋은 길목을 잡아 주점을 열게 해 주신다면,역발산이 산짐승을 사냥해 오고, 탐수자와 취어자가 싱싱한 생선을 잡아 오면 쾌도자가 요리를 해서 장사를 한다면, 5년 안에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호호호... 백 년 치 선불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대들은 앞으로 50년 밖에 더 살지 못 할 것 같은 데, 나머지는 어떻게 할 셈이지요?"
"하하하...주인은 언제나 손해를 보고, 수하들은 언제나 이득을 보는 것입니다"
"호호호... 벌어들인 수익은 그대가 셈을 할 모양인데, 주인에게 돌아 오는 이득은 무엇인가요?"
"우선 주인을 찾아 온 손님에게 맛있는 주효를 제 공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수하들이 절대로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며, 노숙을 했다고 가슴 아파 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밑바닥 인생들이 토해 내는 한탄 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호호... 아래층은 밑바닥인생, 윗 층은 좀 더 낳은 인생들이 모일 수있었으면 좋겠군요! 제남과 태산 중간 지점에 눈에 드는 좋은 길목을 잡도록 해요.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너무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우리네 인생 같은 건물을 짓도록 하세요. 지금 바로 떠나도록 해요. 여기 금 백 냥의 대명통행보초(大明通行寶抄)가 있으니, 나머지는 죽을 때 황천 길의 노자 돈으로 쓰도록 해요 호호호..."
"하하하...아씨를 주인으로 뫼신 것을 자랑으로 알았는데, 아씨께서는 우리 같은 수하를 둔 것을 자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대명통행보초란 대명제국이 보증하는 지폐로, 어느 전장(錢庄)에 가지고 가도 액면과 동일한 금으로 환전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용을 가진 어음이나 마찬가지다.
"호호호... 기대 되는군요! 뭘 하고 있어요! 하루 속히 자랑을 하고 싶으니, 대목 소목 인원과 값을 따지지 말고, 완공 날자를 서두르도록 하세요! 알아 들었어요"
하던 요리도 팽개치고 일곱 사람이 가고 난 뒤, 천 풍림이 하던 요리를 계속 하며 투덜거렸다.
"풀이 마른 지 몇 년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찰거머리는 붙어 있고, 이제는 개 뼈다귀가 일곱 마리니... 아이고 내 신세야..."
"야 야 이 놈아! 말은 똑바로 해라! 풀이 마른 것은 역병 때문이었지 찰거머리하고 무슨 상관이냐?"
"호호호...시숙! 시숙이 찰거머리라는 것은 알아?"
"히히히...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먹을 것이나 먹고 나서 풀칠을 하던지 들러붙던지 해라"
"호호호... 천지가 마주 보고 펼치는, 천지합벽이라는 무공 초식을 견식 해 보고 싶지 않아?"
"그야 궁금해 죽겠는데, 보여 준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감추려고 드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