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39화
야화 39화
연분홍 군삼(裙衫)에 빨간 군대(裙帶)를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그 끝을 길게 옆구리에 늘어뜨린 모습은 머리에 꽂은 산호잠(珊瑚簪)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천 풍림은 은은한 하늘 색 장삼에 검고 굵은 허리띠를 둘렀는데, 그 굵고 검은 허리띠가 유약해 보이던 사내를 강인한 남자로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안팎 색갈이 달랐으며, 보선을 뒤집듯 훌렁 뒤집으면, 또 다시 안팎이 다른 두 가지 색으로 되어 있어서, 옷과 허리띠 모두가 네 가지 색으로 바꾸어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궁궐의 상의국(尙衣局)과 침공국(針工局)에서 사흘만에 지어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개방의 소식 통이 빠르기는 빨랐다. 공주와 내가 태산에 가려고 포문차참(浦門車站)을 지나 포구를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취아선이 따라 붙었다.
"잉? 옷이 날개라고 하더니, 그렇게 입으니까 아주 딴사람이 되었구나"
"호호 시숙하고 이제부터 밀월여행을 떠날 차례가 아닌가요?"
"그래 그래 가야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느냐?"
"부모님도 뵙고 왔으니, 다시 제남으로 돌아가서, 제남 땅에 있는 마교를 때려 부수고, 다음에는 북경으로 가서 북경에 있는 마교를 청소 해야지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겠느냐?"
"북경에 중도성이 있고, 남경에는 궁궐이 있으며 그 중간 지점인 제남은 우리 두 사람의 둥지가 있으니, 두 사람이 빈번하게 왕래를 해야 하는 길은 비질을 해서 깨끗하게 쓸어 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럼 제남이나 북경뿐만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냐?"
"호호호... 놀라기는? 석가장(石家庄) 곡부(曲阜) 서주(徐州) 홍택(洪澤) 그 네 곳은 청소를 하라고 사부님께서 전갈을 보내셨어요"
"아주 초토화를 시킬 심산이로구나"
"그게 마교의 반 수나 되겠어요? 반의 반도 되지 않는데, 조금 따끔하기는 하겠지요"
"무섭구나 무서워"
"마도는 본래 그래요"
"누가 너희더러 마도라고 그랬느냐? 말끝마다 마도 마도, 마도 타령을 하여, 내 속을 뒤집어 놓느냐"
"호호호... 속이 뒤집혔어요? 뒤집힐 속이 있으니 다행이군요"
"아우야! 말 좀 해라"
"크크크...나도 요즘은 눌려 지낸다오"
"눌려 지내? 그럼 네가 아래로 깔린단 말이냐?"
"깔리는 것은 맞소"
"그럼 천지번복을 했다는 소리로구나?"
"아니오. 하늘과 땅이 마주 보고 있는 상태라오"
"마주 봐? 마주 보고 어떻게 깔리느냐?"
"호호호... 호호호... 홀아비가 알 까닭이 있나! 호호호..."
늙은 거지가 양 손을 깍지 끼고, 깍지 낀 손을 바라다 보며, 목을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자기 무릎을 닥 쳤다.
"알았다! 무릎 위에 달랑 올라 앉는 것이로구나? 히히히..." "호호호...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그것은 풀을 쑤는 것이고, 다음에는 철컥 달라 붙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찰칵..."
"홀아비가 그것을 알면 홀아비라고 하겠느냐? 아우야! 그 다음 초식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개를 후려 패듯 작대기를 휘두르면 될 것 아니겠소?"
"호호 호호... 내가 갑자기 개가 되었네? 깨갱 깨갱... 호호 호호..."
"에잇 빌어 먹을...저 놈의 개를 잡아먹던지 개장국을 끓이던지 해야지..."
"호호호... 삶아도 너무 뜨겁게 삶지마! 호호호..."
이런 별 천지가 없었다. 체통을 지켜야 하고 교양 있는 척 해야 하고, 만사가 안 된다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하는 억압 속에서만 살다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이런 자유는, 생각해 보지고 못했던 꿈의 게계였다.
개방적이고 활달한 함녕은 다시 야생에 물들어 갔다. 꾸밈 없는 감정 그대로를 토해내는 상쾌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동화해 오는 그런 함녕이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풍림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함녕에게 동화 되어 가면서 순화(純化) 되어 가고 있었다.
근(根) 경(境) 식(識).
뿌리도 중요 하지만,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가는 주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 주어진 환경에 따라 배움이 각각 다른 것이니, 환경이란 맹모(孟母)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포문차참(浦門車站)을 지나 포구를 빠져 나갔다. 새로 지어 입은 연의군(連衣裙)은 요즘 말하는 원피스 스타일로 파오(袍)라고 하여, 윗 저고리와 치마가 붙어 있는 긴 옷으로 심의(深衣)라고도 한다.
네 겹으로 지어진 옷을 폭 넓은 허리띠로 조이고 있어서, 활동하기 간편하게 천내군(穿內裙)이라고 하는 속치마를 입지 않아도 되었다. 속 옷을 입지 않았으니 옷 아래로 스며드는 2월 하순의 봄 바람이 차갑고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노팬티라는 말이겠으니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홍택호(洪澤湖)를 향해 북상을 하는 길이었다, 내안(來安)이라는 고을에 들어서려고 산 모퉁이를 도는데, 복면을 한 일단의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세 사람을 에워 쌓았다 4~50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중후한 목 소리로 물어 왔다. 과거에는 이름 있는 장수였으리라. 그 검을 들고 있는 자세만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함녕 공주라는 분이 아닌가 확인을 하고 싶소" "호오~ 맞아요 부인하지 않겠어요"
"그럼, 공주에게는 죄가 없으나, 그 아비를 잘 못 만난 것이니 우리를 탓하지 말기를 바라오"
"호호호...잠깐만! 그대들이 나를 기다린 것 같으나, 실은 내가 그대들을 기다렸다면 어찌 하겠어요?"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내가 오늘 이 길로 오리라는 것을 그대들은 어찌 알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그리고 표적이 될 만큼 화사한 옷 차림을 했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그럼 함정이었다는 말이오?"
"호호 호호... 불안 해 할 것 없어요! 우리는 세 사람 뿐이니...다만 그 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지요...성급하게 굴지 말아요! 몇 마디만 더 하겠어요. 나를 죽여서, 이미 죽어 간 그대들의 친지가 다시 살아 난다면, 내가 기꺼이 죽어 드리지요" "?...."
"나를 죽이면 원한이 조금 풀릴지 는 모르나, 대국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지요? 그대들이 더 핍박을 받게 되겠지요. 내가 이번에 황실에 들어 간 것은, 더 이상 그대들을 핍박하지 말라는 상소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믿겠어요? 앞으로 그대들이 불온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은 더 이상 관아에서 그대들을 추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에요. 가슴 속에 원한의 칼을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손에 검을 들고 반역을 꾀하지 않는 한, 앞으로는 떳떳하게 얼굴을 내 밀고 다녀도 아무 일 없을 것이에요. 이 함녕의 명예를 걸고 말 하는 것이랍니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지요 내 그림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보세요! 태양의 반대 편에 그림지가 지는 것은 당연한데, 그 그림자가 일어 서서 당신들을 향해 걸어 갈 것이에요! 너무 놀라지 말아요! 그림자는 당신들을 죽일 수 있어도, 당신들이 그림자를 벨 수 있나요? 그림자를 벨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