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13화
야화 13화
"주 된 거처와 활동 무대는 어디로 잡을 생각이오?"
"제남(濟南)이 북경과 남경의 중간 지점이니, 역시 제남 땅이 좋지 않겠어요?"
"태산 산속을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합시다. 우리들 둥지만은 역시 내가 살던 집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렇게 해요! 하루에 한 번 태산에서 제남에 나들이를 하면 될 것이에요. 이따금 북경에도 들리고요. 걱정 되는 것은 황상이나 황후께서 풍림을 만나 보시고 싶어 하실 것인데 어쩌면 좋지요?"
"서찰에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나 아직 야생의 때를 벗지 못 하였으니, 용이 된 다음에나 찾아 뵙겠다고 하시오"
"지금도 용이 아닌가요?"
"아니, 일 이년만 지나면 여의주를 문 용이 되어 승천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아직은 여의주를 물지 못한 소룡(小龍)이니, 청룡이 되었을 때 찾아 뵙도록 합시다"
"호호호... 풍림의 그 말 그대로 전해 올릴 께요"
"쯧! 정말 저런 찰거머리가 따로 없구려!"
"호호호...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했어요"
남경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취아선을 떨쳐 낼 생각으로 새벽 일찍 제남 땅을 떠나 온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한시진도 되기 전에, 거지영감이 헐레벌떡 뒤 쫓아 온 것이다.
"노 형님! 아침 일직부터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시오"
"어디를 가다니? 아우님과 계수씨가 남경에 볼 일이 있으니. 내게 길 안내를 부탁한다고 한 것이 아우가 아니었는가?"
"호호호... 아우가 아니라, 이 계수씨가 그렇게 전하라고 했답니다. 아우님은 형님을 깨우자고 했지만 너무 곤히 자는 것을 깨우는 것을 도리가 아니어서, 점소이에게 잔 돈푼을 쥐어 주고 잠에서 깨어나거든 이 길로 남경으로 간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답니다"
"쯧쯧쯧... 그런 것을, 그 점소이란 놈이 앙심을 품고, 잠도 깨기 전에 나를 두들겨 깨웠구먼"
"호호호... 아침부터 또 멱살을 잡혔단 말이에요?"
"내 멱살을 잡으라고 잔 돈푼을 점소이에게 준 것이 계수씨가 아니 었 남?"
"호호호... 그럴 리가 있나요"
"히히히...앞으로는 내가 곤히 주무시더라도 사양 말고 깨우도록 하시게 히히히..."
"태안(泰安) 땅에서 점심을 먹어도 되겠습니까 노 형님?!"
"염병을 할... 아침은 굶기겠다는 말이냐?"
"호호호... 우리도 아침을 굶었는데, 거지가 한끼 굶는다고 죽지 않을 것이니, 투정은 남경에 가서 부리지 그래요"
"달 덩이같이 예쁘고 순한 얼굴에 마음만은 야차로구나"
"호호호...찐빵 속에 팟 고물까지 맛이 있어 봐요! 언제 집어 먹힐지 모르지 않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팟 고물에 독을 섞었단 말이로구나"
"알았으면 됐어요"
"히히히...하기야 톡 쏘는 맛이 없다면, 내가 왜 독한 고량주를 마시겠는가? 히히히...그래 남경은 왜 가는 것인데?"
"정말 이럴 거에 요? 미주알고주알 다 까 발려만 한다는 말이에요?"
"히히히...노파심(老婆心)에서 그러는 걸 가지고..."
"할망구였다면 큰일 날 뻔 했네..."
"쯧쯧쯧...공주라는 사람의 말투가..."
"또 공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날에는 똥 쌀 각오를 해 욧!"
"알았다 알았어! 커억~ 독하다 독해! 아우야 어떻게 붙어 사냐?"
"노 형님! 내가 조금 더 독하니 걱정하지 마시구려"
"뭐야? 네 놈이 더 독해?"
"호호호... 소안독심의 제자란 것을 알아야지. 호호호..."
무심히 보아 넘겨 알지 못했으나, 천 풍림의 그림자가 한동안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 났다. 곁을 스쳐 지나 가던 차(茶) 보부상인(褓負商人)의 그림자 속에 묻어 갔다 가 돌아 온 것이다.
"노형님! 여기에서 헤어져야 하겠소이다"
"헤어져? 여기에서?..."
"우리야 독을 마셔도 되지만, 노형님도 같이 독을 마시고 살아 남을 수만 있다면, 이대로 그냥 같이 가도 되고요"
"뚱딴지처럼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태안 땅에 있는 태안반점(泰安飯店)에서 우리를 위해 독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 외다. 거기에서 우리 두 사람은 우선 죽어 볼 생각인데, 노형님도 끼어 보시겠소?"
"태안반점에서? 우리가 그리로 갈 것을 어찌 알고..."
"호호호... 시숙! 우리가 어디로 간들 따라오지 못 하겠어요? 같이 합석을 하지 그래요?"
"아니다 아니야! 그럼 어디서 다시 만나지?"
"저승! 저승 길로 같이 가는 것이 어때요? 호호 호호..."
"빌어먹을...어떤 놈들이냐?"
"저승에 가 봐야 알 것 같소 노형님!"
"쯧! 아주 죽지는 말아라 잉! 우리들의 밀월여행이 이제 시작인데, 안 그러냐?"
"노형님이, 공주하고 혼인이라도 했단 말이오? 우리는 누구누구이며 밀월여행은 누구하고 누구란 말이오?"
"이 놈 아우야! 점점 네 놈까지 독해지면,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고 살란 말이냐?"
"밀월여행을 하겠다는 마누라에게 기대시구려..."
"호호 호호... 냄새가 나서 기대는 건 싫어!"
"에잉! 둘 다 아주 죽어서 살아나지 말아라"
취아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공주의 그림자가 소리도 없이 거지 늙은이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그렇게까지 할건 뭐요?"
"호호호... 태안 분타에 가서 우리 두 사람과 태안반점을 감시하라고 하겠죠. 빤한 것이지만, 늙은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 두었다가, 약으로 쓸 때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