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10화
야화 10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사부인 누님으로부터 한가지 숙제를 받았다오... 그 숙제를 해결하고 나면, 세상사에 더 밝은 함양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할 수 박에 더 있겠소"
"쯧!... 내가 더 이상 혀를 차게 하지 말아요! 어떤 숙제인지는 모르지만 풍림의 생각을 말 해 봐요"
"쯧!... 내 생각은 말이오... 취아선(醉兒仙)인가 뭔가 하는 그 늙은이를 먼저 만나 보았으면 하오"
"호호호... 그 골치 아픈 늙은이를 만나서 어찌 하려고요?"
"그래도 그대와 나를 맺어 준 월하빙인(月下氷人)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거짓말 말아요! 순수한 야생의 개 뼈다귀가, 요즘은 미끈미끈한 미꾸라지가 되어 요리저리 잘도 빠져 나가지만 아직은 멀었다 구요"
"낄 낄... 그 늙은이라면 소식통으로는 으뜸이라면서요... 그 늙은이를 통해서 무림의 정세를 들어 보고, 앞으로 어찌 할지 결정을 하는 것도 좋지 않겠소?"
"그 찰거머리는 보통내기가 아니라고요. 성가실 것을 각오 해야만 할 것이에요"
"큭큭... 그대의 섭영공이나 섭안공이 있지를 않소"
"호호호...풍림의 심독공을 이제는 나도 시전 할 수 있다는 것을 깜빡 했네 요, 호호 호호..."
"왜? 설사독(泄瀉毒) 이라도 풀 생각이오?"
"그 뿐이에요?! 소양독(搔痒毒)을 풀어 놓으면 몸이 가려워서 목욕도 할 것이고 냄새도 덜 나지 않겠어요? 호호 호호... 생각만 해도 재미 있어라... 좋아요! 그 늙은이를 만나 봅시다"
"북경이나 남경에 우선 들려야 하는 것 아니오?"
"왜? 이제는 나를 떼어 놓고 싶은 것이에요?"
"쯧!...내가 혀를 차게 하지 말아요. 그 순하고 교양 있던 함녕이 점점 개 뼈다귀가 되어서야 쓰겠소"
"호호호.. 우리들의 기가 서로 섞여서 그런 것을 어찌 하겠어요. 아바마마나 어마 마마가 나를 잡아 봐요? 그대로 놓아 주겠어요"
"흐흐흐...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어야 하겠구려! 아무튼 산에서 일단 내려 가고 봅시다"
제남은 역사적으로 제(齊) 로(魯)의 문물이 모인 곳이며, 태산(泰山) 자락에 위치한 샘물의 도시로서 산동성(山東省)의 성도이기도 하다. 지하에서 솟아 오르는 용출수(湧出水)가 100여 개나 있고, 그 중에서도 표돌천(豹突泉) 흑룡천(黑龍泉) 진주천(珍珠泉) 오룡담(五龍潭)은 사대용천으로 유명한 수향(水鄕)이다.
오룡담 옆, 오룡객잔(五龍客棧) 2층에, 보름 달처럼 후덕하고 삶은 계란 흰자처럼 피부가 고운 소년과 소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오늘이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영락8년(永樂八年) 3월.
4년 동안 끌어 온 전쟁이 끝나고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등극 하여 년호를 영락(永樂)이라고 한지도 8년이 조금 넘었다. 소년과 소녀는 약관이라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간 시기며, 갓 청년이 된 어중간한 그런 시기였다. 그러나 이 두 남녀가 지니고 있는 절기가 하늘과 땅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취아선(醉兒仙) 이라는 거지 영감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태산 산자락에서 만난 소 형제와 여명부를 가졌다는 소녀가 사흘동안, 오룡객잔 이층에서 기다린다고, 소식을 전하라 했으니, 아마 지금쯤은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가 왁자지껄하게 소란하여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았더니, 들어 가겠다는 거지 영감의 멱살을 부여 잡은 점소이가 막무가내로 못 들어 가게 막아 서고 있었다.
"이런 때려 죽일 놈! 늙은이 멱살을 잡아?!"
"그러기에 못 들어 간다고 했지를 않소"
보다 못한 풍림이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자, 함녕 공주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그냥 두고 보라고만 하였다.
"이 때려 죽일 놈아! 대명 제국의 공주님께서 이 몸을 초청한 귀하신 몸이란 말이다! 그런데 네 놈이 이 귀하신 몸의 멱살을 잡아?"
"흐흐흐... 차라리 어느 양가집 규수가 기다린다고나 했으면 믿어 주는 척이라도 하지, 할 일이 없어서 공주마마께서 거지영감을 기다리시겠소? 2층에 공주는커녕 맹주도 없소"
"히히히... 이 놈아! 네 놈 같은 썩은 동태 눈깔이, 공주를 보면 알기나 하겠느냐?"
2층을 올려다 보던 거지의 눈과 함녕 공주의 눈이 마주쳤다. 그 옆에 소 형제란 놈이 서서 싱글거리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이고 소 형제! 이 노 형제가 왔다네! 이 썩을 놈이..."
"소형제가 노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인데, 공주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너무 한 것 아니오?"
"너무해? 내가 너무 했다고?... 잉? 이잉...알아 들었네! 미행(微行)을 나왔단 말이지? 히히히..."
이것도 구경거리라고 모여 들었던 몇 사람이 싱겁게 끝나 버린 멱살잡이에 실망을 한 듯 흩어져 갔다.
"호호호... 여기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별원을 잡아 두었으니 그리로 가요"
"히히히...공주님이 그리 말씀 하신다면... 보았지 이 놈아?! 이제야 이 위대 하신 이 몸을 알아 보겠느냐? 점소이를 하려면 동태 눈깔을 빼서 반짝반짝 기름 칠을 해야지 이놈아! 히히히..."
"아이고... 왜 때려"
점소이 머리통에서 수박 통 두들기는 퉁 하는 소리가 날만큼 세게 꿀밤을 먹였다. 맞고만 있을 점소이가 아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함녕이 점소이의 손 안에 은전 부스러기를 쥐어 주자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며 돌아 서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콩알만한 늙은이가..."
정말 콩알만한 늙은이였다. 그러나 이 콩알만한 늙은이가 무림 삼선의 한 사람이며 20만 개방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공주님..." "그렇게 꼭 티를 내야 하겠어요?"
"히히히...부모 입장이 돼 보 슈...지금 수배령(手配令)이 내려 있단 말이오. 얼른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글 한 통을 쓰거나 해야 할 것이오"
"그럼 일부러 소란을 피웠단 말이로군요"
"공주가 쫓기면 이 귀한 몸도 쫓기게 될 것인데, 애저녁에 글 한 통만 써 두면 될 것이 아니겠소"
"황! 저것 봐요 내가 성가신 늙은이라고 몇 번 말 했잖아요"
별동(別棟)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기도 전에, 벌서 순검(巡檢)이 들이 닥쳤다. 군사들이라서 거칠었다.
"긴 말 할 것 없다! 내가 공주 함녕이니라. 소문을 내지 말고 조용히 위지휘사(衛指揮司) 한 사람만
나를 찾아 오도록 하여라"
위엄이 풀풀 날렸다. 처음 대하는 모습이었다. 장수라도 이러한 위엄을 뽐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위엄은, 뽐내려고 한다고 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다 몸에 벤 것이 아니면 그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대단한 위용이구려!"
"그럼 점소이에게 멱살이나 잡히는 찰거머리하고 같은 줄 알았어요? 내가 공주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요? 내 얼굴 모습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