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가 더 좋아진 썰
새엄마가 더 좋아진 썰
그래도 나름의 어렸을 적 작은 상처는 안고 살고있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집 재혼가정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올라갈 시절에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자세한 사유는 부모님들이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했었기때문에 뭐가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께 듣기론 뭐 아버지께서 외도를 해서 그에 못이긴 어머니가 집을 나간거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이미 그 전부터 어머니의 마음이 떠나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무릎까지도 꿇으셨었다고. 그렇게 해도 도저히 돌릴 수 없었다고 그러시더라.
또 할머니께서는 어머니가 무슨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그것때문에 집을 나간거라고도 하시고..
그 종교가 뭔진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이혼 전 어머니는 몇년후면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느니
너도 주기도문(교회는 아니지만 이상한 주문같은게 있었다.)을 외우고 다녀야
귀신이 너에게 붙지 않고 좋은일이 있을거라느니 이런말들을 했었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친어머니의 모습이다. 솔직히 어렸때도 그 종교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지않아 있었으나
어머니가 말했던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어머니한텐 한줄기 빛이었으리라 싶기도하다.
아직도 기억한다. 원래 종교라 하면 치를떨던분인데 집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말하던 소리가 현관문 너머로 들렸었을때.
그때가 아마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그 종교를 접했던 때였을거다. 그때 처음 문을 열어주셨었다. 종교사람들에게.
그후론 어머니도 점점 그 사람들과 얘기를하면서 그쪽으로 빠졌던 것 같다. 어린마음에 그냥 어머니 말동무가 되어주는사람들이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처음엔.. 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지 말라고도 해보고 그사람들을 막아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돌아오는건 차가운 어머니의 표정뿐이었기에 나중엔 포기를해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이혼을 하고나서는 친어머니를 뵐 수도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아무 말없이 어느날 떠나버렸기에.
그 시기에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겉돌았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던 시기에 재혼을 하셨다.
그때문에 이사도 하고. 처음엔 그냥 아는 친구라고 하던 사람이 어느날 새어머니라고 나타나는데 사춘기였던 나는 반발심이 컸었다.
새어머니도 새어머니지만 그 밑에 딸려온 두명의 동생때문에.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피한방울 안섞인, 성마저 다른 이녀석들이
내 동생이랍시고 들러붙는데 정말 싫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왜 성이 다르냐고 묻진 않을까, 동생들과 하나도 안닮았기에
혹시라도 우리집이 재혼가정인걸 알아채진 않을까. 그래서였는지 참 많이 괴롭히기도, 미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녀석들도 머리가 꽤 커서 내가 먼저 다가가려해도 녀석들이 받아주질 않아 되려 내가 상처를 받을때가 있다.
뭐 뿌린대로 거두는거지 싶지만서도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더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만.
이후에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이. 위에서 말은 안했지만 내 바로 밑에 친동생이 한놈 있는데
내가 그렇게 아버지를 원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러냐고 나한테 대들기도 많이 대들었다.
참 순하고 착한녀석인데 그때만큼은 정말 형 뭐 이런거 없이 대들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철이 훨씬 빨리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많이 울고, 방황도 많이하고 그러면서 고등학교시절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래도 그렇게 몇년 얼굴 맞대고 살다보니 정이 들더라. 처음엔 어색하기만 하던 엄마라는 소리도 입에 붙고
동생들한테도 점점 더 다가가려 노력하게되고. 그러다 스무살 되던 해 친 외삼촌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게 나한테까지 연락이 오더라. 친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이혼을 했더라도 가족의 연은 끊을 수 없다하시며 외삼촌이랑은 계속 연락하셨었거든.
그때 친엄마랑 연락이 됐다. 이혼하고나서 처음으로. 7년만이었지. 하지만 그때도 수화기너머로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을뿐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외삼촌의 장례식장엔 결국 나타나지 않으셨다. 참 그땐 목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더라.
정말 장례식장 가는 차 안에서 아무말도못하고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서 내내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곤 그 후년에 군대를 가게됐고
종종 연락하긴 했지만 자주 하진 못했다.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엄마가 연락을 잘 안받으려고 그러더라. 아마 외부사람과 접촉을 줄이기위해
그쪽에서 미리 이상한 말로 세뇌를 시켜 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점점 더 엄마에 대한 마음이 줄더라. 그렇게 그립던 사람인데.
아무튼 전역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다시 연락을 자주 하게 됐다. 그러다 얼마전에 잠깐 만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만나서 그러더라. 돈이 필요한데 돈좀 줄 수 있냐고. 큰돈을 바란것도 아니었기에 선뜻 드렸었다. 예전 기억하던 모습보다
많이 늙으셨었기에 측은한 마음도 들고 해서 그냥 드렸다. 그리고는 얼마 안있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돈좀 더 줄 수 있냐고.
그때서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아마 종교에 다시 갖다 바칠 돈일텐데. 드려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그래도 낳아주신 부모님인데 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돈을 드렸다. 참 큰돈도 아닌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계속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말만 하는 어머니도 밉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 어버이날을 맞아서
이번 주말에 집에 잠깐 들렀다. 생각해보니 돈은 벌면서 부모님께 용돈한번 드린적이 없었던 것 같아 10만원을 새어머니께 용돈으로 드렸다.
처음엔 안받으시려고 하시다가 내가 큰돈도 아닌데 받으시라고 계속 그러자 결국 받으시더라. 정말 고맙다고. 감사히 잘쓰겠다고.
우리 아들 다컸네 이러면서 정말 친아들 보는 눈빛보다 더 애틋하고 대견하게 보시면서 눈물까지 흘리시더라.
참 그걸 보고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철없던시절 못되게 굴었던 못난놈을 그래도 친아들처럼 아끼면서 키워주셨던걸 다크고난 이제야 깨닫게됐으니.
그러면서 동시에 친어머니 생각에 회의감도 들더라. 물론 돈이 필요하다는 말도 어렵게 꺼내셨겠지만 누가 친어머니고 누가 새어머니인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참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요즘. 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그냥 정신차리라고 욕이나 실컷 해줘라
마지막으로 일게이들 좋아하는 세줄요약도 적어야겠다.
1. 나한테는
2. 엄마가
3. 복수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