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라 부르지 마 -1
걸레라 부르지 마 -1
내 나이 스물 일곱. 어려서부터 공부 쪽엔 취미가 없어 여상을 나왔고 졸업 후 바로 한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열 아홉의 꽃 같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벌써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이제 막 사회초년병을 벗어났지만 난 벌써 중견급에 속하는 것이다. 시집갈 때 혼수를 해 갈 만큼의 돈은 이미 몇 년 전에 적금을 부어서 마련해 놓았고 비자금도 어느 정도 있다.
난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이 대놓고 왕따를 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에 대한 소문이 안 좋은 걸 안다. 내 남자관계에 대한 소문이 몇 년 전부터 나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그 소문들이 내 개인에게 크게 피해를 줄 수준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가끔은 외롭단 생각을 하긴 한다.
난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래서 잠시라도 누가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했다. 잠잘 때를 빼놓고, 아니 가끔 잠잘 때도 옆에 누군가 있다^^ 그게 예전엔 동생이나 친구였지만 요즘은 남자들이란 게 조금 다르긴 하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엔 무난한 성격으로 별 탈 없이 성장했고 취업을 해서도 처음에는 순진한 열아홉의 소녀였다. 난 학교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흔한 바바리맨 한번 보지 못하고 남자 손목을 잡거나 잡혀본 적도 없다. 정말이지 태어난 그대로의 깨끗한 몸이었다.
내 손으로 자위조차도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빨간 비디오나 책은 구할 수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성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가정시간에 배운 남녀의 성교에 의해 임신이 되고 임신주기는 어쩌고...하는 게 다였다.
그러다 고3때 처음으로 로맨스 장르의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낯뜨거운 섹스신 때문에 책장을 덮어버렸다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열어서 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너무도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회사에 취업을 했다. 남자직원들만 10여명 있는 사무실에 배치가 되었고 대부분 대졸 후 취업한 사람들이라 나보다 적어도 10살 이상씩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나를 참 예뻐해 주었다. 자기들 막내 동생 혹은 조카나 딸 같다며....
내가 스무 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감사 문제로 직원들이 연일 야근을 했었다. 난 크게 상관은 없지만 가끔 늦게까지 남아서 심부름도 하고 서류정리를 도와주곤 했었다.
밤 11시경...
대강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들 퇴근을 하는데 박대리님이 같은 방향이라 평소처럼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중소 도시라 서울처럼 늦게까지 버스가 없다. 그 시간에 집에 가려면 천상 택시를 타야 하는데 거리가 꽤 돼서 택시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남자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바래다주곤 했었다. 물론 방향이 같았기에 거의 박대리의 차를 애용하곤 했었다. 그 날 나를 데려다 주면서 박대리는 졸리다며 커피를 한잔 사달라고 했다.
나는 자주 데려다 주는 게 고마워서 그러마고 했다. 그는 우리 집 가는 길에 있는 한적한 공원에 차를 세웠다. 그리곤 자판기 커피를 사달라고 했다. 난 커피숍에 앉아서 무슨 얘길 할는지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대리님...겨우 자판기 커피 가지구 되시겠어요??"
"그러엄~ 미스 김이 사주는 커피라서 그런지 꿀물보다 더 맛있다"
"제가 근사하게 한잔 사려고 했는데...^^"
"야, 경치 좋지, 이쁜 여자가 옆에 있지, 이보다 더 근사한 경우가 어딨나~"
"호호호 대리님도 참~ 자판기 커피 한잔에 이렇게 비행기 태우시면 제가 밥이라도 한번 사면 공주취급 해 주시겠네요^^"
"밥 산다구?? 그럼 공주가 뭐냐...내가 여왕님으로 받들어 모시지~~"
"정말요??ㅎㅎㅎ"
"그럼~ 밥 살거야??"
"호호 생각 좀 해보구요~ 그러잖아도 매일 저 데려다 주셔서 밥이라도 한끼 살까 했거든요...말 난 김에 날짜 잡을까요??"
"이야!!!난 농으로 한 건데 정말 사주려나 보네~ 나 땡잡았다!!"
"에이~ 땡잡긴여...대신 너무 비싼 건 안돼요~~~"
"난 미스 김이 사주는 거면 비상이라도 맛있게 먹겠다"
"호호 비상이라구요? 설마 제가 대리님께 그런 걸 사드리겠어요~~"
"말이 그렇단 거지 이 사람아~"
우린 감사가 끝난 다음 날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정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우리 집 앞.... 내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그가 나를 부른다.
"미스 김!"
"네? 왜요, 대리님?"
"어~ 얼굴에 뭐가 묻었어~"
"네??뭐가요??"
난 서둘러 핸드백을 뒤져 거울을 찾았다. 차안이 어두워서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안보였다.
"뭐가 묻었나 모르겠는데요....저 뭐 묻었어요??"
"하하...미스 김 순진하네...아직도 그런 농담에 속고 말야^^"
"네?? 농담요? 에이~~대리님도 참...놀랬잖아요~~~"
"하하하"
"호호호"
난 그의 어깨를 살짝 주먹 쥔 손으로 두들기며 함께 웃었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이번엔 머리에 뭐가 묻었어요??"
"어....아까 공원에서 묻었나보다."
"에이~ 이번에도 혹시 농담 아니세요??"
"참내...내가 바보냐?? 같은 농담 두 번 해서 썰렁하게 만들게...^^"
"헤헷...하긴..."
그가 머리카락을 만지자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난 원래 누가 내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한다. 굉장히 안정감 있고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가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기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리곤 부르르...떨림이 왔다.
"왜그래?? 춥니?"
"아뇨...저 원래 누가 머리카락 만지는 거 디게 좋아하거든요...^^"
"어...그래?? 그럼 내가 쓰다듬어 줄까나~~"
"호호호 대리님도 참....그렇다는 거죠...."
그가 팔을 내밀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그 느낌을 음미했다.
"미스 김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거 디게 좋아하는구나~"
".............."
"앞으론 내가 자주 쓰다듬어 줘야겠는걸~"
그가 목소리를 깔고 조용히 말한다. 난 말없이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느낌을 음미한다. 눈을 감고 있으니....잠이 오려 한다.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그가 나에게 다가 오는게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내 볼에 와 닿았다. 난 화들짝 놀래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대리님...."
"정화야, 오빠라고 불러봐...내가 정화 오빠가 돼 줄테니..."
"어떻게 그래요....대리님인데...."
"회사 밖에서도 대리님이야?? 난 정화한테 그 이상이 되고 싶은데...."
"대리님...."
"또 대리님이란다.
..해봐...오빠라고...."
"오...하아...못하겠어요~~~어떻게 대리님한테 오빠라 그래요..."
내 주변엔 오빠라 부를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관계로 난 오빠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내 입에서 오빠란 호칭이 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해보라니까...오빠라고 부르는 게 뭐가 어렵니~"
"오...오....오빠....휴우...정말 어렵다....^^"
"거봐~ 하니까 잘하네...자...다시 한번 해볼래? 오빠라고?"
"오빠..."
이번엔 더듬지 않았다. 내 입에서 오빠란 말이 나왔단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것도 직장 상사에게^^
"아이구~ 요 귀여운 내 동생~~이제부턴 이 오빠가 정화를 동생으로 삼은 거다~"
"......................."
난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 해졌다. 내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볼에 뽀뽀를 하고 또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앗...오빠라고 부르라는 그의 말에 놀래서 볼에 뽀뽀한 거 추궁하는 걸 잊어먹었다. 이제 와서 뭐라고 하기도 어색하고.... 모른 체 가만히 있다가 분위기도 어색하고 해서 집에 가려고 입을 떼었다.
"저...대리님..."
그가 날 쳐다본다.
"또 또...오빠라고 하라고 했지~"
"네...저...오빠...저 이만 집에 들어갈께요."
"응, 그러렴~ 내 동생아~ 부모님께 오빠 안부 전해드리고^^"
"ㅎㅎㅎ우리 부모님 아들하나 더 생겼네요~"
"그럼~ "
"저 갈께요...안녕히 가세요~ 낼 회사서 뵈여~"
"잠깐만...뭐 잊은 거 없니??"
"뭐요?? 저 핸드백밖에 가지고 있던 거 없는데...?"
"그거 말고~~"
"??????????"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자신의 볼을 내게로 내민다.
"오빠 동생 된 기념으로 동생이 오빠한테 뽀뽀나 함 해 주라~"
난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갑자기 왜 이러는 지 알 수가 없다. 그 동안 나한테 관심 있다는 내색 한번 없었는데....
"됐어요~ 제가 왜 대리님...아니 오빠한테.....*^^*"
"오빠 동생 된 기념이라니까~"
"싫어요...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알았다...자식 되게 짜게 구네~~~"
그가 약간 토라진 듯한 말투로 말하자 갑자기 가슴이 덜컹한다. 화났나??? 난 슬쩍 그의 눈치를 본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지만 날 쳐다보지 않는다. 난 속으로 어찌해야 할 지 너무 망설여졌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고 그의 뺨에 입술을 댔다가 뗐다.
"어?? 야~~ 이렇게 기습적으로 하는게 어딨어~ 이거 무효다!"
"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인제 됐어요...저 갈래요~~"
내가 차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자 그가 갑자기 차 문을 잠근다. 난 놀래서 그를 쳐다봤다.
"정화야, 우리 조금만 더 얘기하고 가자~"
차 안의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간다.
"너무 늦었어요...내일 또 얘기해요...갈께요..."
"그래....너무 늦었다니 할 수 없지...오빠 서운하다...."
그의 서운하다는 말에 난 또 약해진다.
"그럼 딱 5분만이에요...12시 땡~하면 저 들어갈께요"
"그래그래~ 자식...오빠 말 잘 듣네...어이구~ 우리 이쁜 정화~"
그가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이뻐라 해준다. 난 그가 날 좋아해 준다는 데 가슴이 설레었다. 여태까지 20여 년을 살면서 어떤 남자도 나를 좋아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이거야 내 생각이구~ 나 모르게 짝사랑하던 사람은 있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 날 좋아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그가 또 내 머릴 쓰다듬어 준다. 내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난 또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음미한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이 들 것 같다. 막 졸음이 몰려올 무렵 그가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다. 난 속으론 놀랬지만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있는다.
그러자 그가 용기를 얻은 듯 혀로 내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내 첫키스였다. 가슴이 벌렁벌렁...두근두근....뛰기 시작했다. 그가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또 한 손으로는 내가 얼굴을 돌리지 못하도록 내 뒤통수를 살짝 잡았다.
그리곤 혀로 내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이제 그의 혀가 내 이에 닿았다.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그의 혀를 맞아들였다. 부드러웠다. 남의 혀가 이렇게 부드러울 줄이야.... 그의 혀가 내 입 속에서 제가 주인인 양 마구 헤집고 다닌다. 내 이와 잇몸, 입천장, 혀를 마구 핥으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입이 내 혀를 빨아들인다. 마치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숨이 차다....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다. 아...키스란 이런 거였구나.... 나도 그의 혀를 빨아본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혀를 내밀어 나에게 보내준다. 난 그가 했던 것처럼 혀로 그의 혀를 핥기도 하고 삼킬 것처럼 빨아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키스를 하는 사이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한 손이 어느 새 내 가슴으로 내려와 있었다.
내 가슴은 그의 손에 하나 가득이었다. 전에는 가슴이 큰 게 약간 컴플렉스였는데 그의 손안에 가득 찬 걸 보니 딱 맞는 크기란 생각이 든다. 난 그의 키스와 약간의 애무로 꽤나 흥분이 됐지만 처녀 특유의 두려움으로 인해 가슴에서 놀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나와 입술을 맞댄 채 내 눈을 바라보며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그와 사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서로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더 이상을 허락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입술과 손을 나에게서 떼고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줬다. 그리곤 의자 깊숙이 앉았다.
"정화야....오빠 너 좋아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여태 그런 내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
난 그 다음 이야길 기다렸다. 그래서 어쩌란 것인가....
"오늘 갑자기 오빠가 이래서 정화한테 미안해...정말로..."
"....................."
"그치만 앞으로 정화만 좋다면 오빠는 정화랑 사귀고 싶은데...."
"...................."
난 더 깊은 침묵으로 답했다. 여태 그를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장 대답해 주지 않아도 돼...다음주에 우리 밥 먹을 때...또 이야기하자..."
"저...갈께요..."
난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 차에서 내렸다. 내가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는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난 열쇠로 대문을 열고 그를, 아니 그의 차를 한번 쳐다봤다. 가슴이 턱 막히는 게...느낌이 이상했다. 난 재빨리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시계 바늘은 벌써 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 내일을 위해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