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추억 상편
열두번째 추억 상편
호사다마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 일거다. 치열한 경쟁을 하던 업계
의 잘 나간다고 여겼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어쩔 수 없던 그 회사의
거래처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 와서 한 해의 평균매출을 반년도 안되어
달성하며 희희낙락하던 어느 겨울날 뜬금없이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는 비록 우리와는 경쟁관계였지만 필수불가결하게 서로 필요에
의해 일부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던 오월동주 같은 업체였고, 그 회사가
허위매출 부풀리기를 하면서 부가세 부분에서 문제가 되어 거래관계에
있던 모든 회사의 매출관계를 전수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와는 정상적인 상거래임을 증빙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세법이
정말 웃긴게 세무서는 그저 업체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문제
제기만 하면 그 뿐이고 그에 대한 소명은 오롯이 조사를 받는 업체에서
해야 되는 것이다.
주장을 하려면 그에 대한 논거를 준비하는게 기본이고, 죄를 처벌하려면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되고, 소송을 하려면 상대의 잘못을 원고가
밝혀야 되는데…이 놈의 세무서들은 정말…
그렇게 의혹이 있으면 지들이 조사를 해야지. 나쁜 새끼들 너무 편하게
사는 새끼들
우리회사가 외감법인도 아니어서 그저 세무사에 기장대행과 결산만 맡기고
있었기에 세무사 사무실에 찾아 갈 일도 없고 가끔 증빙자료나 던져주러
경리직원이 찾아갈 뿐이었지만 이런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챙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세무사 사무실 위치도 제대로 몰랐다. 주소를 찾아 세무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그에 대한 후속 증빙자료 준비를 사무장이라는 여자를
불러 시키고, 저녁시간이 되어 미안한 마음에 의례적인 식사대접을 하겠다니
하던 일 덮고 쪼르르 쫓아 나왔다.
이건 그냥 언제 소주나 한잔하자는 류의 의례적인 인사였는데…
세무자료를 준비할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막상 붐비는 식당에
마주 앉아보니 겨울이라 짙은 스웨터에 하얗게 올라온 목이 여자로
여겨졌다. 두어시간 자료를 같이 챙기면서 말을 나눠서인가 아니면
가끔 통화로 결산서류를 챙겼기 때문에 그런것인가…의외로 아주 많은
어색함이 든 것이 아니었고, 아줌마인걸 티라도 내는 듯 스스럼없이
친하지도 않은 남자 앞에서 삼겹살을 뒤집으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편하게 여겨졌다.
‘삼겹살이라 좀 느끼한데 맥주라도 한잔 할래요?’
‘이거 먹고 들어가서 마무리하고 가게요.’
‘하하 네…모 그렇게 급한건 아니잖아요’
‘아뇨. 이거 잘 준비해야 돼요. 소명자료 제대로 안되면 사장님 많이
불려 다녀야 돼요. 그리고 세무사님이 이런거 지연되는거 안좋아해서요’
조사 종료되면 맛있는거 사달라는 말 또한 어쩌면 저녁이나 먹자는
말처럼 의례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술도 없는 삼겹살을
나름 맛있게 먹고 다시 일터로 갔고, 나는 목덜미를 파고 드는 겨울
찬바람을 옷깃으로 세우고 돌아 섰다.
며칠이 지나 준비된 소명자료를 가지고 강남역 근처의 세무서에 던져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아무런 사심이 섞이지 않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자였다. 사심을 담을
수도 없는 것이 이 여자는 우리 회사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다.
매출, 이익, 탈세(절세라고 우기지만…) 그리고 그 방법…
마치 가정경제를 꿰고 있는 와이프처럼 우리 회사를 갈기갈기 쪼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여자였다. 남녀의 만남은 일정부분 포장이
필요한데 이 여자는…
‘사무장님 고생했어요. 소명자료 제출했고…괜찮다네요. 수고했고 고마
워요. 세무사님께도 문자 보냈어요.’
바로 문자가 왔다.
‘제가 뭘요 ^^ 사장님 고생하셨어요. 보완할거 없대요?’
‘나중에 연락준다고 하는데…대충 흝어 보더니 이 정도면 될거라네요.
사무장님이 세무사 자격증 따는게 나을거 같아요.’
‘와 잘됐네요. 음…이제 맛있는 밥 사주세요 ^^’
세무서에서 강남역까지 걸어내려 오면서 맞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려…
그녀가 왔다. 한 줄기 갸날픈 미풍처럼…
아니…이건 그냥 의례적인 걸거야.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이건 그냥
인사말이야. 인사말…
다음 날 식사약속에 맞춰 교대 건너편에서 그녀를 픽업했고, 거리낌없이
옆자리에 올라 탔다.
‘모 먹고 싶은거라도…’
‘삼겹살 말고 소고기 사주세요. 꽃등심ㅎㅎ 요즘 회사 잘되잖아요ㅋㅋ’
이런…
이래서 안되는거야. 잘돼도 안돼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요. 그럼…그런데 집이 어느쪽이에요?’
‘둔촌동이에요’
‘음…그럼 방이동 쪽으로 가죠. 저녁 먹고 가려면 날도 추운데 귀찮을테니…’
한 겨울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지만 방이동 골목은 활기에 넘쳤다. 두툼한
외투와 목도리까지 두르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도 즐거움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이 가득한 고깃집이었다.
‘조금씩 구워주세요~ 천천히 먹어도 돼요. ㅎㅎ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얘기했어요. 아! 그냥 먹으면 느끼하시댔죠? 소주도 한병!’
이렇게 말수가 많은 여자였나.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거래처라면 거래처고
회사살림을 속속들이 아는 와이프라면 와이프인데…지극히 사무적으로
대하는게 맞겠지.
그러나 소주 몇잔이 들어가자 수고함에 대한 공식적인 저녁식사 자리가
아닌, 거래처가 아닌, 치부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아킬레스건이 아닌…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난 평범한 남자가 되어 갔다.
술 한잔에 노고를 치켜 세웠고, 술 두잔에 세무서를 씹었고, 술 세잔에
그녀의 현재를 알게 되었고, 술 반병에 그녀의 웃음진 눈매에서 호감을
느꼈고, 술 한병에 말을 놓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시선이 두려웠다.
아니 어떻게 마주쳐야 할 지 부담스러웠다.
쌩긋 웃는 눈은 온전히 한 여자의 눈으로 느껴졌기에 술 잔이 채워지는
머리 속은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거래처일 뿐인데…
1차에 대한 답례로 2차를 사겠다는 호기로운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2차 제의에 눈 앞에 바로 있는 바로 들어갔고, 그녀는
흐느끼는 블루스 음악 속에 비로소 여자가 되었다.
어둑한 실내에 흐르는 음악에 호감을 보내 왔고, 차가운 맥주를 잔에
따라 주며 남자임을 알려 줬다.
늦지 않게 대리를 불러 그녀를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 길에 취기가
올라왔다. 아니 혼란이 밀려왔다. 정리되지 않은, 예기치 않은 그녀의
눈웃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복잡했다. 집에 다다를 즈음 진동이
울렸다.
‘저녁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2차는 제가 내려고 했는데…다음에
제가 밥 살게요 ^^’
…응? 다음에?! 흠…다음에…다음에라…
그런데 그 다음은 보름이나 지난 후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꽤나 바쁜
겨울이었고, 여전히 정리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나는 쉽게 다음을
말하지 못했다.
또 다른 느낌의 저녁 자리가 있었다. 거래처라는 이름이 조금 더 퇴색
되었고, 그저 한 명의 여자로 보여졌다. 그래…그냥 가보는거야…
‘많이 바쁘셨나 봐요. 뭐 드실래요? 말씀만 하세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 하하하’
의례적인 말일텐데 듣고 싶은 것만 들렸다. 바쁘셨나봐요…투정으로
들려왔다.
교대 맞은편 보쌈집에서 마주 앉은 두번째의 술자리에서 그녀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삼십대 중반을 지나는 나이, 전문대를 나와서 하게 된 경리업무, 그래서
옮기게 된 세무사 사무실, 대학 시절 알게 된 남자와의 이른 결혼,
그리고 제법 큰 아이 하나…
이른 결혼을 하는 여자들이 뒤 늦게 딴 생각을 품는 경향이 많은 건
어쩌면 아줌마가 되어 염치를 쉽게 포기하는 여자들의 속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만 나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그녀는 의외로
자신에 대한 얘기를 술잔에 넣어 털어 놨다.
가끔 우리회사에 들러 사무실에서 얘기하는 나를 몇 번 봤고,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무자료 준비로 같이 몇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낯 뜨거운 말을 아무
렇지도 않게 했을 때 내 얼굴은 알코올 기운이 아닌 부끄러움으로
달아 올랐다.
뭔가 홀릴만한 칭찬을 해야 하는데…여전히 내 머리 속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 다음은 비교적 빨리 찾아 왔다. 어느 오후 지난 번 저녁에 대한
답례를 제의했고, 아주 당연히도 저녁자리에 마주할 수 있었다. 사무실
근처에서 그녀를 픽업해서 방이를 지나 조정경기장 근처의 카페촌으로
이동했고 난 비로소 그녀가 여자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결심을 했다.
이런 관계는 너무도 위험하지만 다가오는 여자를 마다할 수는 없다.
맥주잔에 부풀어 오른 거품이 주저 앉을 때 두근거렸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 앉았다.
‘우리…자주 볼까?’
뒤에 부언부언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자 무슨 말인지 지껄였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맞추며 말했다. 잠잠했던 심장 어림이 다시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나 좀 무서워요. 매일 집에 가면 사장님 생각이 나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서워요.’
그렇게 생기 있게 떠들던 그녀가 가라 앉았다. 작지도 않은 카페의
음악소리에 묻힐 수 있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쐐기처럼 그녀의 말이
귀에 꽂혔다.
‘생각 많이 했어요.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되나…그래도 생각은
죄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 상처 받기 싫은데…좀…무서워요’
두서없는 말이 카페를 가득 채웠다. 생각이 많았지만 정리되지 못한
단어들이 순서없이 섞여 나왔고, 나는 그녀 또한 나처럼 혼란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혼란에 빠지자 나는 오히려 정리가 됐다. 아니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뻔한 의도였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가보고…돌아올 수 있는 곳까지만 가자.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돌아올 수 있는 곳까지만 그냥…가보자’
대리를 부르기도 애매한 맥주 두어병이 비워졌고, 차가운 맥주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따스하게 목을 적셨지만 넉넉히
저녁대용으로 시킨 안주는 그대로 식어 갔다.
밖으로 나와 차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에 그녀가 팔짱을 껴왔고,
차가운 강변의 바람에 머리결이 휘날려 뺨을 스치며 향기를 남겼다.
차에 올라 히터를 켜고 차를 움직이자 당연히 음주 괜찮겠냐는
우려가 있었고, 나는 그 말을 기다려 차를 조금은 한가한 곳에
주차를 했다.
입술이 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여자의 입술은 늘
따뜻하다. 뺨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입술은 몽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따스했다. 얼지 않는 타액은 달콤한 혀를 통해 건너왔고
고른 치열 속으로 파고 들어간 혀를 쉬임없이 마주하여 희롱하는
그녀의 입술이 기뻤다.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직도 온기가 돌지 않은 손이었는지 맨
살에 닿는 차가움에 그녀가 몸서리를 쳤다. 조심스럽게 브라
가운데를 더듬어 골을 따라 내려와 손가락 끝으로 꼭지를
찾았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조금은 토실한 꼭지가 손 끝에 걸렸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이 손바닥에 눌려왔을 때 나는 비로소 그녀가
온전히 여자로 여겨졌다. 유리창이 차 안의 습기로 뿌옇게 서렸을
때 그녀가 말을 했다.
‘그만…이제 그만 가요…나 힘들어요’
창문을 내리자 겨울 공기가 밀려 들어와 머리를 깨우고 부풀어
오른 바지춤을 가라 앉혔다.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 열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또 다른 술자리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그녀와의 틈이 사라졌다.
4분기 부가세 신고가 있는 동안 힘들게 일했는지 하루의 휴무가
그녀에게 주어졌고, 한적한 겨울 한 낮의 강변도로를 달려 팔당호의
카페에 들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 일렁이는 호수는 눈으로 차가웠지만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 카페 내부는 옆자리에 앉아 재잘거리는 그녀로 인해
더욱 평화로웠다.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그녀는 소소한 일상을 나풀거리고 있었지만
내 귀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않고 향기만을 쫓았다.
어깨로 손을 돌려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귀로 스쳐 지나가는 얘기를
흘렸고, 문득 그녀가 나를 봤을 때 입술을 닫아 버렸다.
조용한 2층의 한겨울 카페에 사람이 없음을 감사했고, 입술에서 더운
향이 배어 나올 때 속삭였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나 힘들다…나가자…’
부풀어 오른 바지춤을 정리할 때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좀 창피하지만
애도 아니니 다 알고 있겠지.
계산을 하고 차에 오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건 무언의
동의다.
오늘은 처음이다. 처음의 여자는 늘 망설인다. 그 망설임의 간극은 생각할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놈의 주변에 모텔이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바보같이 오면서 그녀 떠드는 소리에 주변 탐색을 하면서
오질 않은 것이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에 남녀가 만났으면 당연히 생각을 미리 했어야
했고, 쉴 만한 곳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바보같으니,
멍청한 놈…
차를 돌려 미사리 쪽으로 나오는 길에 들어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고,
난 점점 초조해졌다. 여자는 민감하다. 초조함을 눈치챘을거다. 먹이를
좇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 발정난 남자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제 괜찮죠? 그냥 가요. 하하’
그녀의 말은 귓가에 흘릴 수 밖에 없다.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 만지면서 대꾸도 없이 하남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너무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었나…그녀의 손에 땀이 차오른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하남시에 모텔이 보였다. 신축인지 오래된건지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저 운에 맡기는 수 밖에…
난 운이 나쁘진 않은 사람이었다. 모텔 주차장에서 쭈뼛거리며 무슨
말인가 하려던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고 말없이 계산으로 하고 방문을
열었을 때 나쁘지 않은 냄새에 안도했다.
양치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 침대로 눕혔다. 두툼한 겨울 스웨터를
입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누워 있는 그녀에게 입맞췄다. 누구나 항상
처음은 어색한거야…말은 자칫 그 어색함을 배가시킬 수 있다. 이런
때야 말로 웅변보다는 몸짓의 진실함이 필요한 것이다.
짧았던 카페에서의 아쉬운 키스보다는 이렇게 편안한 그리고 안락한
키스가 끈적하다. 일부러 키를 꽂지 않았기에 조명이 켜지지 않은
실내는 눈을 감지 않아도 충분히 표정을 감추어 주었고, 그런만큼
오롯이 감각만이 살아 있는 입맞춤이 좋았다.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곧 내 것이 될 터인데
굳이 서둘러 스며들 이유가 없다. 손을 들어 볼을 어루만지고,
혀를 희롱하며 손 끝으로 입술을 어루만졌다. 어느 새 차가운 뺨은
사라지고 따스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입술라인을 따라 손 끝에
그녀의 입술을 걸고, 귓 볼을 만질 때 그녀가 눈을 떴다.
‘입술 만져주니 너무 좋아요.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에요’
‘…...’
‘우리 이래도 되죠? 괜찮다고 해줘요…’
‘…괜찮아’
‘씻고 올게요’
적당한 조도를 맞춰 놨고, 샤워타올을 두르고 어색한 걸음으로 나와
시트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샤워를 마치고 팬티를
입을 것인가를 망설였다. 배스타월은 내가 써야 되는데 이미 두르고
나갔으니...그대로 작은 타월로 하체만 가린 채 밖으로 나왔고,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망설임이었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시트를 머리까지 뒤덮고 웅크린 채
모로 누워 있었다.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을 때도 그녀는 미동도 않은 채 그대로 숨죽이고 웅크리고 있
었다.
욕실에서 침대까지 그 짧은 거리에도 체온은 급격히 식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만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자 이내 따스해졌다.
차가운 내 몸에 그녀가 살짝 몸을 떨었지만 그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건가.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하는 건가…
어깨를 쓸어 내려 매끄러운 피부를 따라 팔로, 손으로 이어졌다
다시 흝어 올려 어깨에 이르렀을 때 그녀가 손을 잡았다.
‘약속해 줘요. 상처 주지 않겠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무슨 의도인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이런 모호한 단어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그저 모호한 약속뿐…
‘그래…괜찮아’
손을 빼서 등뒤에서 안은 채 가슴으로 다가 갔다. 여전히 싸늘한
방안 공기 때문인가…그녀의 유실은 꼿꼿하게 얼어 손바닥을 찔러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을 뒤에서 감싸 안아 양손으로 움켜쥐자
작은 신음이 흘렀고, 내 손 등 위를 서성거리던 손이 사라지더니
아까부터 발기되어 힙을 찌르고 있던 심볼에 나타나더니 바로
움켜 쥐었다.
곧게 팽창한 발기가 그녀의 손 안에서 조심스럽게 꿈틀댔다. 목덜미
를 핥고 가슴을 쓸어 내려 배꼽에 이를 때도 그녀의 손은 여전히
심볼을 잡은 채였고 그녀를 눕혀 가슴을 찍어 눌렀을 때야 비로소
내 어깨를 둘러 왔다.
가슴을 물고, 핥아 골반을 지나 치골을 스쳐 사타구니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활이 되었다. 충분히 흘러나온 액이 틈새를 뚫고 나와
체모에 젖어 있었고, 흥건해진 물을 핥아 올릴 때 힙을 들어 좀 더
편안한 자세로 벌어진 조개살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