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야기-1
아주 오래전 이야기-1
살아가면서 병원에 갈 일은 많지만 이비인후과란 곳은 잘 찾지 않는 곳이다.
특별히 귀나 코가 아픈 사람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우리들이 병으로 치는 건
감기가 걸리거나 배탈이 나서 가는 내과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누군가로 부터 이비인후과 이야길 듣고 뻔질나게 그 병원을 들락거린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 이다.
한참 PC 통신이 유행 했던 시절,
월 회원비 9,000원에 부가세 900원을 합해 9,900원의 돈을 지불해야 통신을 사용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접속을 위한 전화비 또한 비싸서 그져 채팅이나 게시판에 글 올리고 클릭수 확인하는
재미에 하루가 멀다하고 들락거렸었다.
채팅방이라 해봐야 고작 100여개의 고정방이 전부이고 오랫동안 하다 보니 회원 대부분을 알아 볼 수
있으며 실명제란 단점으로 인해 익명성이 보장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통신회사들이 회원모집을 위해 4개의 자아이디(지금으로 말하면 세컨 아이디)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고 대부분의 작업(?)들은 이 자아이디를 통해 이루어 진다.
우스개 소리로 서로 자아이디로 대화를 하다가 서로 번쎅(예전에 채팅 후 번개를 하고 곧장 섹스로
연결되는 미팅을 번쎅이라고 했다)을 하러 나갔는데 자기 마누라가 나와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통신에 들어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학교 선생님이거나 나름대로 시대를 앞질러 간다고 생각하는
젊은 아낙과 젊은 남자들이 대부분 이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무료로 아이디를 주었기 때문에 여자들의 절반이 거의 선생님이었고
나의 여자경험은 주로 선생님과의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교수도 많이 왔었고 특히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절반을 차지 했으니..
그리고 요즘 소설가나 시인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분들도 PC 통신 출신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대부분 그 곳에서 글을 써온 사람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씨~~~뚜~~삐~~~챠르르르르~~~~"
전화의 통신음과 함께 접속 되었던 PC통신..
이야기 또는 새롬데이타맨 이란 접속프로그램을 통해 오로지 보이는 거라곤 파란화면에 하얀글씨만
올라왔었으나 글짜 한자한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밤을 지샌적이 한두날이 아니었다.
한석규와 전도연이 나와 출세길을 보장 받았던 "접속"이란 영화도 PC 통신에서 시작 되었었다.
내가 만든 아이디의 자이이디를 친구에게 하나 주었는데 그 친구는 영 컴맹이라 타자도 잘되지
않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날 대화방에 들어갔다가 모령의 여인을 한명 만났는데 상당히 지적 수준이 높고
언어의 구사 능력이 보통 이상 되는 여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한번 작업을 해보라고 했다.
며칠동안을 그녀가 접속하길 기다렸으나 접속된 사실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그녀가 접속을 했다.
무쟈게 감성적이라는 그녀의 눈에 뛸만한 방제로 거물을 쳐 놓았다.
별의 별 여자들이 들어와 잘난척을 해 왔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다들 돌려 보냈다.
그러기를 30여분..그녀가 내방에 들어왔다.
최대한 예의를 살려 인사를 했고 특유의 이빨로 그녀를 녹여 나가기 시작했다.
▶아픈노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후리지아 : 네 반가워요.
▶아픈노래 :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시려워 지는 우리들의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후리지아 : 네에~ 참 세상 사는게 재미가 없죠?
그림 같이 그녀가 말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ㅎㅎㅎ
▶아픈노래 : 재미로 세상을 사는 건 아니지만 진실이 왜곡되고 오늘 또 다시 발버둥을 쳐보지만
이 세상에 부를 만한 노래가 "아픈노래" 뿐인 거 같습니다.
▷후리지아 : 네..저도 슬픈음악을 좋아 한답니다.
▶아픈노래 : 저는 서울 입니다. 거실 창문을 열면 푸른 산이 보이는 곳이죠.
▷후리지아 : 네에..그러시군요. 저는 경기도 랍니다.
당시 통신에서는 대부분 뻥을 치고 자신을 적당히 각색하는게 유행이었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그렇게 두어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꽤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당신의 경험으로 대부분 채팅을 통해 만났던 여자는 두번째 만남에 거의 모텔행을 하는게
일상다반사 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끼리 구멍동서가 되는일이 허다했고
우연찮게 만난 여자 이야길 하다보면 그녀들의 신체 비밀까지 알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참으로 용감했던 당시의 여자들이었고 지금의 나이로 보면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되었으리라..
내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교사, 교수 또는 학생들이었고 간혹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여자도 있었다.
신춘문예 등단작가를 비롯해 현재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여러페이지에 걸쳐 이름이 나오는
사람도 꽤 있었으며 간혹 방송인도 만나곤 했었다.
그렇게 그녀와 두어시간의 대화가 오가고 어느정도 인적사항도 유추할 수 있었으며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그녀가 빨려 들어왔다.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딸 하나를 둔 젊은 엄마
..서울강남에 친정이 있고
..남편의 직장 때문에 서울 인근도시에 살고 있고
..시간도 많고
..감성지수가 높으며
..대학 다닐때 퀸카로 뽑힐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남편의 직업이 이비인후과 의료 쪽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야 대화가 끝났고
다음날 한국통신 전화번호 검색툴에서 몇개의 전화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서울인근의 그 도시에 있는 이비인후과는 불과 7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병원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참 시간도 많았었지 ㅎㅎ)
가서 귓밥 파는걸로 접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