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아는 춘자언니
내가아는 춘자언니
‘언니, 아부지가 오라는데?’
‘쫌만 있어봐….썅년!,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할 것이지…….’
막내를 등에 업고, 그것도 선 채로 형광등 불빛도 어슴푸레한 곳에서, 만화를 읽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춘자 언니였다. 우리 세 자매 중에서 제일 나이도 많고, 힘도 제일로 드셌던 춘자 언니.
‘알았다구. 으이그…..아저씨! 나 이거 뒤에 많이 남았거등요? 내일 와서 볼 때, 또 돈 내라고 하덜 마세요, 아셨죠? 참, 아까 뽑기두, 별 모양, 다 한 거 아시져?’
‘하이고 짠한 년! 그래, 알었어! 알았다구!’
언니는 나이도 나보다 많았고, 힘도 좋았지만, 어쩐 일인지, 학교에는 다니질 않았다. 나, 명자, 그리고 언니의 등에 업혀있는 경자까지 합해서, 세 자매와 아부지, 이렇게 네 식구가 한방에서 살았던 시절, 언니는 우리 집의 대들보였다. 나야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들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를 모르고 자란 나 이기에, 항상 집에는 언니가 있는 줄로만 알고 살았다. 우리는 이사를 밥 먹듯이 다녔다. 아니, 춘자 언니의 말에 의하면 늙은이 잔오줌 째리듯이 이사를 간다고도 했고……아부지는 단칸방에서 잘 때, 행여 우리들이 고뿔이라도 걸릴까 싶어, 온기도 없는 웃목에 혼자 자리를 펴고 주무셨다.
‘언니, 아부지는 뭐 하는 사람이래?’
‘그건 알아 뭐허게?’
‘다들 그러잖아? 아빠는 뭐하시냐구?’
‘그냥 사장이라고 그래.’
‘사장이 뭐 그래? 맨날 쪼들려서 이렇게 사는 게 사장이야?’
‘쥐콩알 만한 게 그러면 그렇다고 알 것이지, 말이 많아? 아부지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다. 알간? 어여 숙제나 해! 또 한 밤중에 불 켠다고 주인집에서 호통 칠라?’
언니는 우리 집안의 숨은 법이었고, 지주였으며, 대가리인 셈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지금 에사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지만, 월사금(그 당시에는 학비를 그렇게 불렀다.)을 제 때에 한번도 못 냈던 나는 언제나 불려 일어나, 교무실에서 한바탕 꾸중을 들어야 했다. 얼마나 학비를 늦게 냈던고 하면, 내가 그나마 밀린 학비를 들고 갈 때면, 어김없이 다음 학기 고지서가 발부되는 날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밀린 학비를 들고 가는 날은 쪽 팔리게도, 항상 춘자 언니가 막내 경자를 업고서 학교까지 따라 왔다.
‘나 혼자 가도 괜찮다니깐!’
‘안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소매치기한테 당하기라도 하면 골친다, 너랑, 나랑!, 알어?’
난 언제나 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집에 혼자 남아, 춘자 언니가 무얼 하는지 그게 제일 큰 관심사였다. 언니가 제일 먼저 일어나 하는 일은, 밤사이 찰랑찰랑하게 차버린 요강을 비우는 일이었다. 그 기억이 어째서 제일 먼저 떠오르냐 하면, 집에 들어 앉아서 도대처 뭘 하길래, 밤만 되면, 등이 바닥에 닿기도 무섭게 코를 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잠버릇은 어찌나 고약한지, 코가 시리고, 흰자우가 얼어 붙는 것 같던, 웃풍 쎈 단칸방에서도 언니는 무슨 산삼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이불을 덮고 자는 법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게다가 오줌을 눈다며, 언니가 요강을 밖으로 들고 나간(나는 평소에 자다가 방에서 요강에 오줌을 누곤 했다.)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선 잠이 들곤 했는데, 여지없이 아부지의 춘자 언니를 부르는 소리에 잠이 화들짝 깨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 살던 방은 주인집과 방문을 틀어지게 보고 앉은 단칸방 이었다. 좁은 툇마루였지만, 부엌으로 들어가는 툇마루 앞의 그 공간은 주인집에서 봐도 보이질 않고, 우리 방의 앞은 시멘트 부로끄 벽이 가로막혀 있었고, 들어올 도둑도 없었건만, 담장 위에는 깨진 소주병 조각이 날카롭게 줄지어 박혀 있었다. 언니는 그 당시, 뻑 하면 응댕이를 활짝 까고, 요강에 걸터앉아, 툇마루에 쪼글치고 앉아서 누는 그 자세에서, 곧잘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부지는 그걸 알고 계셨고, 언니가 잠이 들만하면, 요강에 오줌도 모자라, 똥까지 밀려나와 기어이 넘쳐 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보시고자, 그렇게 불렀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 앞 사거리에 있던 대폿집에서 말술을 드시고, 곤드레가 되셔서 들어오신, 그날 밤으로 기억된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고, 방안에서 조차,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오던 그런 날이었다.
‘으..응…언니 어디 가?’
‘아휴, 매친년, 잠 안자고 뭐하냐? 뭐허긴 오줌 째리러 가지……’
언니는 요강이 시끄럽도록 쏴하는 소리와 함께 오줌을 누었건만, 언제나 째린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그 흉물스런 소리를 감추려고 했었다. 나는 기어이 어둠을 가르면서 들리는, 그 폭포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있었다.
‘콰당!, 에구머니나!’
나는 그제서야, 아부지 께서 술에 곯아 떨어져, 요강 위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을 언니를 깨우질 않으셨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나는 황급히 방문을 열었는데,
‘으흐그…으흐그….’
바닥에 고꾸라져 신음을 흘리고 있는 언니의 모습에서 난 한밤중, 휘영청 떠 오른 보름달보다 더 허옇고, 퉁투부리한 언니의 까진 응댕이를 그때 처음 보았다. 게다가 그 밤에 본 언니의 응댕이는 번질번질 윤기까지 흐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사 알고 보니, 그건 요강이 엎어지면서 쏟아진 오줌 때문이었다. 언니는 밤중에 자다 말고, 툇마루에 나와서 요강에 쪼그려 앉은 뒤에, 꼬박꼬박 졸다가 기어이 앞으로 자빠진 것이었다. 그냥 자빠졌으면 툇마루 아래로 널부러 지면서 무릎이나 까지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 퉁실한 응댕이에 그 몸집으로 지그시 눌러대니, 그 살이 요강의 틈새에 보기 좋게 천천히 끼어 들어갔지 싶다. 몸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서 앞으로 쏟아지니, 가뜩이나 꽉 끼워져 있다시피 한 요강인들, 그 오동통한 응댕이에 안 따라갈 수 있었겠나 말이다. 기어이, 몸도 나동그라지고, 응댕이에 쩍 하니 붙어 있던 요강도 허공에서 한 두 번 출렁 하면서 물결 한 번 때리다가, 기어이 낙상을 했으니, 그 오줌이 바닥과 언니의 전신에 지천이 된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나는 언니를 일으켜 세우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무신 냄새래?’
‘뭔 냄새여? 하나도 안 나는뎅?’
언니는 그 다음날 아침, 주인집 사모님의 질문에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 추운 밤, 오줌을 걷어낸다고 물을 디리 부었다가는 어디 빠져나갈 하수구도 변변찮은 바닥에, 오줌 빙판이 될 것은 분명했고, 그나마 언니가 생각해 낸 것은 새벽에 갈아대고 나올 연탄재를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다 꺼져버린 연탄재를 미끄러지지 말라고 바닥에 바수어 트리면서, 깔아 재낄 때는 그렇진 않지만, 언니는 급한 마음에 아직 불기가 벌거스름 남아있는 연탄재를 부지깽이로 부수면서까지 툇마루 앞에 깔았으니, 어떠했겠는가? 빙판이 된 오줌이 연탄재의 열기에 부응해서, 곳곳에서 피칙, 피칙, 피지직 하며, 온 집안 전체에 오줌 지린내를 퍼뜨렸으니, 주인집에서 난리를 칠만도 했던 것. 언니의 기억은 그렇게 요강과 함께 내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오늘도 이 거야?’
언니는 살림을 한다고는 했지만,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언제나 저녁 밥에는 커다란 양푼에 비벼 놓은 비빔밥을 자주 올려 놓았다. 말이 비빔밥이지, 참기름은 눈꼽 만치 넣었으니, 맛이 날 리 없었고, 어디서 사왔는지, 이름도 모를 야채가 언제나 비빔밥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때는 밥도 누룽지와 같이 때려 넣고, 고추장을 버무려서, 한때는 그 누룽지가 돌인 줄 알고 뱉어 놓았다가 눈물을 삼키며, 다시 먹었던 기억도 있었다.
‘아부지 밥은 맨날 저렇게 아랫목 차지구, 우린 왜 언제나 찬밥에, 누룽지만 딥다 비벼 먹어야 되냐구?’
‘쪼끄만 년이 주면 주는 대로 먹지, 왠 말이 그렇게 많아?’
언니는 웃으면서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댔지만, 어린 그 당시로서는 항상 그것이 불만 이었다. 언제나 군용 담요 밑에 고이 모셔져, 아부지가 오실 때까지, 뜨끈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던 그 침범 불가의 양은 주발…… 발이 시려 담요에라도 넣으려고 할 때는, 언제나 볼록하게 주발이 버티고 있는지를, 곁눈질로 나마 살펴야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철칙이었다. 게다가 언니가 만들어 놓은 철칙으로 인해 고생을 하는 것은 오로지 나였다.
‘아효, 매친년, 이 빤쓰 좀 보래지?, 너 똥을 닦는 거냐, 그냥 싸 재끼냐? 언니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깨끗이 닦고 나오라고 했어, 안 했어?’
‘나 이제 부텀 그 종이 안 써. 맨날 욕만 먹고, 나도 아부지 처럼, 신문지 잘라 주든가…..’
언니는 아침 결에 화장실에 가서 용을 쓸 때면, 주인집 눈치 보인다며, 굳이 닦을 휴지를 들려 주었는데, 이 종이란 게 연한 벌거르죽죽한 색감에, 구겨 트려도 잘 구겨지지도 않는데다가, 어떤 것은 빤질거리는 느낌까지 드는 것들이 있어서(대개 그런 포장지는 정육점에서 고기 핏물이 베지 말라고 싸 주는 재활용 포장지였던 걸로 기억된다) 암만 닦아도, 똥꾸녕만 열나 헤졌지, 똥은 잘 닦이질 않기 때문에 하는 투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항문은 벌겋게 똥독이 올라, 보지 씹살 까지 화끈거리며 부어 오르고, 밤중에는 부엌에다 언니가 손수 뎁힌 뜨끈한 물을 대야에 받은 후에, 난 똥꾸녕을 하늘같이 치켜든 채, 언니가 씻어주는 그 손길, 하나하나를 감사해야만 했다.
‘캬, 요년 봐라!’
난 가끔 언니가 아궁이에 연탄불을 갈 때면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도 있다. 연탄을 갈 때는 이미 타 버린 밑에 있는 탄과, 불이 씽씽한, 위의 탄이 쩍 하니,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는 붙어 있는 그 두 개의 탄을 꺼내서 바닥에 뉘여 놓은 다음에, 부지깽이로 가운데를 기가 막히게 나누어, 순식간에 밑불이 될 탄을 아궁이 바닥에 넣고, 숨도 참아 가면서, 새 탄을 그 위에 기가 막힌 속도로 구멍을 맞추어 집어 넣곤 했는데, 사실 19개나 되는 구멍을 개스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그렇듯 쉽사리 맞추기는 어지간히 어렵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언니는 그 당시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로,
‘아효, 요 매친 것들이 들러 붙어서는 응댕이랑, 아가리랑 떨어질 쭐을 몰라요. 별게 다 속을 뒤집고 난리야!’
난 그게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가서야 깨달았지만, 그 당시, 국어 시간에 배우던 의인화에 대한 표현을 저렇게 써 먹는구나 하고 따져 볼 따름 이었다. 난 저녁 시간이면, 아부지가 오시기 전까지, 언니와 하던 실랑이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언니, 나 그 양말 안 신을 꺼야.’
‘요년이 배때기에 기름이 꽉 찼구나!. 이게 어때서?’
언니는 이미 나가버린 폐전구를 양말 안쪽으로 집어 넣은 채, 가뜩이나 자주 빵꾸가 나는 양말의 뒤꿈치를 언제나 기워댔기에 하는 말이었다. 무늬나 비슷하면 말을 안 했다. 어디서 무늬도 열나 촌시런 것을 떼어 와서는, 잘 어울리지 하며 기워대서, 난 심통이 머리 끝까지 치솟곤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양말이 그쯤까지 갔으면, 당연히 양말의 위를 조이는 밴드부분은 바람 빠진 쇠불알 마냥 칙칙 늘어지기 일쑤라, 이건 뒤꿈치의 언밸런스를 탓해야 할지, 아니면 헤벌레 너덜거리는 양말의 대님 부분의 노후한 밴드를 탓해야 할지, 동체 감이 서질 않던 시절 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니의 강권에 못 이겨, 그 유치 찬란한 양말을 내내 신고 다녔다.
‘언니, 나……내일……소풍인데….’
제일 말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철철이 다가오는 소풍이었다. 언니는 언제나 내가 몸이 제일 약하다며, 반찬이야 김치 하나였지만, 도시락 밥 위에 계란 지짐을 잊지 않고 얹어서 밥을 챙겨 주었다. 그러나, 소풍은 달랐다. 무언가 평소와 다른 것을 챙겨가야 하질 않은가?
‘알았어…..아효, 미련한 년 같으니라구, 얼릉 얼릉, 빨랑 얘기하면 좀 좋아? 꼭 턱 밑에 받쳐서 입 여는 폼새 하고는….’
그 날 저녁, 아부지가 오시기 전에 언니는 생전 내가 태어나, 듣도 보도 못하던 것을 들고 들어왔다.
‘언니, 이게 다 뭐래?’
‘요게 뭐냐 하면, 콜라란 거야, 톡 쏘고 얼마나 맛이 기가 막히는데…..’
그 당시, 그런 물건은 야매로 팔리던 미제 깡통장사에게서나 얻을 수 있는 물건 이었다. 값도 꽤 나갔을 것인데, 언니는 그 외에도 내게 김밥을 싸 준다며, 마른 김도 한톳 사왔고, 단무지 하며, 시금치, 게다가 바나나라고 하는 별난 과일도 싱싱한 것으로 사왔다.
‘아효, 목구녕이 미슥거려 미치겄네, 명자야, 부엌에서 고추장 쫌 갖고 와. 목구녕이 미식거려 미쳐 뒤지겄다.’
언니는 그 날, 고추장을 아마 서너 숟갈을 맨 입으로 삼켰지 싶다. 저녁에 아부지가 오시고, 언니가 마련한 소풍짐을 윗목에 고히 모셔 놓은 것을 보시고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막내 경자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우리 집의 살림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언니는 그때까지 학교 문턱도 밟지 않은 채, 살림만을 했고, 막내는 언니를 엄마라고 내내 부르다가 언니로 고쳐 부르는 동안, 수도 없이 그 불러대던 버릇을 고치느라 종아리를 수도 없이 맞아야 했다.
‘작은 언니야, 큰 언니가 엄마가 아니면, 누가 울엄마야?’
난 오랜 세월 동안 그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에겐 엄마가 없고, 언니와 아부지 밖에는 없다고 대답할 밖에…..나도 그렇게 보고, 듣고 자랐으니까. 그러던 어느 봄날,
‘언니랑, 창경원 갈래?’
‘증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지금이야 놀이동산이 보편화 되어 있고, 마음만 먹고, 어느 정도 여유만 되면, 하루 종일 진저리 나도록 즐길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그 내용물이 변질된 창경원이 가장 큰 볼거리 이자, 놀이터 였다.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가 열리고, 그 안에는 동물원하며, 뺑뻉 돌아가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 비행기처럼 생긴 놀이기구를 타 보았느냐는 것이 언제나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 였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언니의 그런 용기와 결심은 어린 나로서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언니를 따라가며, 경자를 앞세워 솜사탕이나 진저리 나게 먹자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언니야, 저 비행기 타자.’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랜만에 차려 입은 주름 치마에 조끔 빵꾸가 나긴 했어도 어엿한 흰색 타이즈를 챙겨 입고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언니를 앞장 세워 비행기처럼 생긴 놀이기구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자 마자, 이게 생각과 달리 엄청 무섭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나는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빙글빙글 돌아대면서, 위로 위로 한없이 올라가는 놀이기구의 안에서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고 있었다.
‘자, 내리십시오.’
비행기가 그 미친듯한 곡예를 뒤로 하고, 땅에 내려 앉았을 때, 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의자로부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던 물줄기….난 그 자리에서 한강수 같은 오줌을 질기고 만 것이었다. 언니는 하나도 창피한 얼굴이 없이, 나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신고 간 타이즈와 팬티를 벗기고, 수도물을 틀어 깨끗이 씻기면서도, 나와 굳이 눈을 맞추려 하질 않던 언니….
‘아효, 매친년, 거기서 그렇게 실례를 하면 어떡하누?’
언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더니만,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언니의 팬티를 내게 입히는 것이었다.
‘아효, 우리 명자, 응댕이 커져가는 것 쫌 보지? 내꺼가 얼추 맞는 거 봐?’
그 날 언니는 바지를 입었지만, 안에는 아무 것도 입질 않고, 나와 경자까지 데리고, 창경원 유람을 마쳤다. 창경원이 닫히고, 사람들이 창경원 앞의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풍선을 잃어 버릴 새라, 손목에 묶어 놓았던 경자는 이미 언니의 등뒤에서 잠이 들고, 나와 언니는 천천히 비원 쪽으로 향해,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재미 있었어?’
‘응, 많이 많이…’
‘우리 명자, 나 없어도 살림 할 수 있지?’
‘왜?’
‘응, 언니, 내일부터 돈 벌러 멀리 가거든……’
‘어딘데? 멀어?’
‘응, 아주, 아주 멀어.’
‘그럼, 경자는 나 학교 가고 누가 봐?’
‘글쎄, 그게 제일루 걱정이다. 아부지가 어떻게 하시겄지.’
‘가면 영영…..안 와?’
‘아니, 자주 올께. 돈 많이 벌어 가지구……’
‘밥은 어떻게 하구?’
‘왜 명자, 너 곧잘 하잖아? 나 없이도, 저녁 때면 넌 굶어도……, 아부지 뜨신 밥이랑……..어린 경자도 굶겼다간 언니한테 혼 난다, 알았지?’
‘아부지가 버는 돈도 모자라?’
‘아니, 아부지도 넝마 주으시느라 허리도 아프신데, 이제 고물상이라도 하나 차려 드려야지. 그래서 돈 벌러 가는 거야. 살림도 곧 피겠지 뭐. 나 없더라도 아부지 말씀 잘 듣고…..그런 분 없다. 그리고, 경자, 잘 돌보고…….’
‘그럼 이제 못 봐?’
‘못 보긴? 우리 구여운 명자 보러 꼭 오지…….., 왜 않와?.......... 반에서 지금처럼 반장 놓치면 안돼, 알았지? 언니는 배운 게 없어서……….. 큰 돈 벌고 싶어도 못해…….’
‘아부지 한테 얘기해서 가지 말지…..’
‘어이구 썩을 년따우! 이제까지 힘들게 우리 세 자매 거두어 주신 것만 혀도 감지덕지여. 내 말 잘 들어. 우리 세 자매 모두 길거리에 버려졌던 핏덩이 였어, 그 말이 뭔 말인지 알어? 고아였단 말이여, 고아! 아부지는 혼인도 안 허시고, 우리 세자매 거두어 키우시느라 저렇게 뼈 빠지게 고생 허시는 거여. 이제 쫌 알겠냐? 이 미련한 년아!’
‘괜히 욕이야!’
난 그 당시 정확하게 언니가 하는 말의 내용도 모르면서 괜시리 욕을 한다고 성질이 뭐 같이 치솟았었다. 그 날 저녁,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집에 오는 동안, 언니는 창 밖을 넋을 놓고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고, 나는 손에 찐득 하게 붙어대는 경자 몫의 솜사탕을 뺏어 먹으면서도 그게 단맛인지 모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 왔을 때, 나는 방안에 가득 찬 술 냄새와 웃목에 쭈그리고 술에 취해 잠이 들어 계시던 아부지를 발로 차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언니는 잠이 깊이 든 경자의 옷을 갈아 입히고, 자리에 누인 후에 그 날 저녁, 부엌에서 밤을 새가며, 음식과 오래도록 먹을 밑반찬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전 보지도 못한 반찬으로 상은 그득했고, 언니는 밥상을 들여다 놓고, 아부지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부지는 식전 댓바람부터 밥은 입에도 안 드시고, 소주병을 깠다.
‘아부지 고생 허셨슈, 이 돈으로 우선 경자 돌볼 아주머니나 구하셔요. 제가 자주 편지 올릴께요……’
아부지는 미련 곰팅이 같이, 밥도 안 쳐먹으면서, 그렇다고 언니의 말에 대꾸도 안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언니가 방을 나가기 전에 말이 없이 나발을 불어 대시던 아부지의 입이 열리고야 말았다.
‘춘자, 이년, 어디 한번 안아보자.’
아부지는 내 생전 처음으로, 언니를 안고서 눈물을 비오듯 쏟으셨다. 언니도, 아부지를 끌어안고, 목청이 터져라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그 사이에서 웃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경자는 멋도 모르고, 언니의 바지춤을 붙들고,
‘언니, 이제 절대로 엄마라고 안 부를께, 가지 마라!, 응?’
모두 말이 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주인집 아주머니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구, 온 동네 남자들 좇대가리 빨아 자시 드니, 기어니, 양코배기 좇대가리 물고 늘어져 미국 구경 허는 갑다. 썩을 년!’
난 한마디라도 해대고 싶었지만, 내 팔꿈치를 쿡 치는 언니의 서슬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대문 밖에는 훤칠한 키의 외국 사람이 군복 차림으로 생글거리며, 웃고 서 있었다. 아부지에게 경례를 붙이고, 아부지는 얼결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그 옆에는 중신애비로 자처하는 미제 깡통장수 쩜백이 아저씨가 다리를 절룩 거리며, 서 있었다.
‘마, 잘 살낍니더, 형님, 걱정 마이소. 마이클 이야, 내 잘 안다 아입니꺼? 승실하고, 똑똑하고……..춘자야, 어렵드라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된데이, 물 설고, 땅 서른 남의 나라 아이가?, 으이?……..’
아부지는 돌아서는 언니를 못내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언니는 모자라는 살림을 그나마 꾸려가 보려고, 내 소풍을 계기로, 쩜백이 아저씨의 요구에 못 이겨, 사까시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동네의 이 남자, 저 남자의 좇물을 입으로 뽑아 주면서, 한푼 두푼, 받아 쟁였다는 말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다, 기어이 중매쟁이로 나선 쩜백이 아저씨의 사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양색씨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귀국을 앞둔 착한 마이클 에게 소개되어, 천지간에 구해주는 사람도 없이, 가랭이가 덜덜 떨려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섹스에 대한 경험도 없던 나이에, 진저리 치도록 마이클에게 고초를 당하고서, 언니는 돈을 벌 수 있도록 미국에 데려가 달라고 했고, 마이클도 흔쾌히 승낙을 했다는 거였다.
‘언니야, 빨리 와. 돈 많이 벌어서…..’
언니는 끝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리 앞에서 사라져 갔다. 그게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언니는 정말 꿋꿋하게 돈을 부쳐왔다. 사기 당하고, 보지나 개벌창 되기 십상인 케이스와 달리, 마이클은 농군의 자식이었고, 언니는 그곳에서도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아부지는 그 돈으로 고물상을 일으키셨고, 우리는 언니 덕에 둘 다 대학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늘 공항에서 언니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경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저 멀리서 누군가 휠체어에 실려,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휠체어를 끄는 외국인은 머리가 히끗 했지만, 그것은 사진으로 보아오던 마이클 형부가 분명했다.
‘언니야! 춘자 언니!’
‘명자여, 경자여? 아효 매친년들, 공항에서 무식하게스리 소리는? 어디여?’
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언니의 손을 붙들었다.
‘손이 찬 걸 보니, 명자, 니 년 맞지?’
‘근데, 언니 어디 아프우?’
‘응….그냥 그렇지, 늙어가는데, 뭐…..’
언니는 심한 당뇨와 합병증으로 시력도, 근력마저도 잃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우리 세 자매를 예전으로 돌려 놓지도 못하면서, 이렇게나 심한 상처로 긁어 대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자주 온다드니…..’
‘이렇게 아픈데 올 수가 있어야지…형부 눈치도 보이고….’
그러나, 언니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 밝아 보였다.
‘우리 오랜만에 양푼에 비빔밥이나 실컷 때려 먹자, 응? 경자는 어딨냐?’
다만, 언니와 우리들의 추억만은 세월 속에서도 환한 빛,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