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야 야썰 봄날의 잎파리는 붉다
소년이 느낀 것은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단순히
상대방의 혼잣말을 들은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혼잣
말을 남들이 듣든 말든 하는 사람... 드라마에도 그런 장면이 많고 말이다.
소년, 태영은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주 가끔 사람들은 혼잣말을 한다.
그것도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말을. 아주 가끔... 태영은 그렇게만 알고 있었
다.
그러던 어느 날, 태영이 국민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부유한 집안 덕인지
아니면 그의 빼어난 성적 탓인지 태영이 반장이 되었다. 담임인 여선생과 식
사도 같이 했던 기억이 날 정도이니까 자신을 꽤나 귀여워했을 것이다.
그날도 여선생과 같이 중국집에 갔었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 다. 암튼 같이 갔다. 중국집 주인은 아이가 귀엽다고 했고 선생
은 마치 자기 자식 인양 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었다. 선생이 뭘
먹었는 지는 기억 안 나지만 태영은 볶음밥을 먹었다. 가끔 여선생이 티슈를
들고 뭐가 묻었는지 태영의 입 주위를 닦아 주었다.
뭔가 생각이 났는 지 여선생이 자신의 가방으로 손을 가져갔다. 안을 주섬
주섬하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때도 태영은 주섬주섬 남은 밥을 모아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 이런... 지갑을 두고 왔네. 어쩌나...]
밥을 모으는 데 집중하던 태영은 여선생의 음성이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약
간 시무룩해 있는 여선생이 보였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말했다.
" 저 돈 있어요."
여선생의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태영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마주보았
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본다.
" 뭐라고... 했니?"
" 돈 가지고 있어요. 우선 제거로 내시면..."
여선생이 당황한다.
" 무... 무슨 말이니?"
[ 왜 얘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지?]
이번엔 태영이도 당황했다.
" 어... 그냥... 제가..."
그때의 기억은 그게 다였다. 나머지는 흐리멍텅하다. 일은 그렇게 수습되었고
일단 태영이 돈을 냈고 여선생이 다음날 돈을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이 들렸다.
' 내 생각을 어떻게 안거지?'
태영은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다른 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집중을 해야 했고 상대가 별 의심없이 생각을 하는 것만 들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다. 혼잣말을 남이 듣게 말하는 사람은 없는 거다.
자신은 지금까지 다른 이들이 내뱉는 생각을 엿들은 거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삶에 어떤 저주가 내려진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이 신기했고 쓸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슈퍼맨 같은 것은 되고 싶지 않다. 물론 능력이 있기
전에는 슈퍼맨이 되고 싶지만 막상 하늘을 날게 된다면 무서워 질것이다.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
던 창욱이는 자신을 돈 많은 부잣집 외동아들에 마구 돈을 써서 자신의 군것질
을 책임져 주는 지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도 비슷했다. 국민학생이
생각하면 얼마나 생각을 할까?
몇몇 여자애들은 자신을 재수 없게 생각하고 있었다. 집안의 돈 가지고 반장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 전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무실의 선
생들도 마찬가지 였다. 1반의 남자 선생은 자신의 담임마저 돈만 밝히는 여자라
고 속으로 욕을 한다.
태영은 몇 번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 남에게 털어 놓으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
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말하려 했지만 두분 모두 바쁘다는 말만을 했다. 아침
에 얼굴을 보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저녁에는 자신과 유모만이 같이 식
사를 했다. 49세의 체구 좋은 유모가 오히려 자신의 엄마와도 같았다.
그 유모에게 말할까 했지만... 그는 차라리 나 혼자 지옥에 살아야지 생각을 했
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의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그는 비로소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전학을 하면서 그의 집안이 학교 선생에게 알려졌지만 새로 담임이
된 김영임선생은 별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야 생각했지만 그녀는
갓 부임한 초짜 선생이었지만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사심이란 없
었던 거다. 태영은 대학까지 졸업하는 동안 그녀만을 유일한 선생으로 기억했다.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될 때 까지도 태영은 반의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중학교 2학년까지 무사했다. 절대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그의 외모가
꽤 귀엽고 예쁘기는 했지만... 그의 동창들에게 태영에 대해 묻는 다면 그냥 남자애
치고는 예쁜 애였다... 가 다일 것이다. 공부는 10들 안에는 드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을 3일 남긴 날 태영은 큰 실수를 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 간의 싸움이 났다. 일의 단초는 기억 나지 않는다. 단지 여자
애들 전체와 남자애들 전체가 교실에서 싸움이 난것이다. 점심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 난다. 당시 2학기의 반장은 여자였다. 이신영 이라는 예쁘게 생긴 여자애였고
부반장은 장인혁이라는 남자 애였다. 그 싸움을 중재하러 나선 반장과 부반장끼리
오히려 더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태영은 그 싸움에 끼지 않았다.
평소에도 반의 어떤 행사든 자리는 차지 하나 결코 나서지 않았던 태영이었으
니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점심시간동안 책을 보는 것이 유일한 학교에서의 재미이
었기에 짜증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뭘 어찌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
저 앉아서 책에 집중하려고만 했다. 그날 그가 읽고 있었던 것은 애드가 알렌 포의
추리소설이었다. 이제 살인범에 대한 추리가 나오려고 하고 있는 때였기에 태영은
책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그때 뭔가 차가운 것이 그의 뒤통수에 날아왔다.
철퍼덕--!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일이었기에 놀랐고 또 그것이 젖은 헝겁이었
기에 더욱 놀랐다.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고 떨어진 것을 보니 걸레다. 축축해진 뒤
통수를 만지며 일어나 돌아보니 아무래도 던진 것은 이신영이었다. 다들 놀라서 자
신을 바라다 보고 있었고 그때 반 전체가 조용했다.
" ...이 씨. 째려보면 어쩔건데."
싸우던 상태였었기에 흥분해 있던 신영이 태영에게 소리쳤다. 태영은 한참을 째
려보다 걸레를 주어 들고는 신영에게 다가갔다. 한발짝 한발짝 다가설수록 신영은
주춤거린다.
" 이제 그만해. 곧 선생님 오실 거야."
신영에게 다가간 태영이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 여기서 그치지 않으면 어젯밤 네 이불이 적셔진 것을 애들에게 말한다."
그리고는 걸레는 신영의 손에 건네주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
가는 태영을 보다가 신영은 애들에게 그만하라고 외치곤 자신의 자리로 갔다. 수업
시간 동안 가끔씩 자신을 바라보는 신영의 시선을 느끼고는 괜한 참견을 했다고 후회
하는 태영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태영은 집에만 있었다. 그 겨울방학 동안 태영은 자신의 인
생이 바뀌게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만약 그 겨울방학 때 자신이 몰랐
다면, 만일 자신이 그것을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태영은 가끔 생각해 보
곤 했다.
집에서 주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의 부모는 집에 없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서 현재의 저택으로 이사하면서 오히려 부모는 태영에 대한 관심이 더 없어
진 듯했다. 가끔 자신을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다 보는 유모가 있었기에 태영은
자신이 진짜 불쌍한 건가 하고는 생각했다. 그건 아니라고 정리하면서 말이다.
어느 눈이 내리던 날, 이신영이 집에 찾아 왔다. 응접실의 소파에 마주 앉았고 이 뜻
밖의 손님이 반가웠는지 유모가 우유에 과자를 내오며 부산을 떨었다. 태영은 계속
보고있던 책의 흐름이 깨져 버려 탐탁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찾아온 반 친구를 내쫓
는 행동을 하지는 못했다. 순수했던거지... 그는 후에 그렇게 생각했다.
" 그날..."
유모가 자리를 비켜주고 나서야 신영이 말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그녀는 응접실의
구경 만을 했다.
" 그날, 그 얘긴 무슨 뜻 이었어?"
" 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신영의 눈에 추궁하는 빛이 가득했다. 조금은 한심스러워진 태영이
그 눈길을 피해 우유를 마셨다.
" 그... 걸레 던진 날 말야. 이불... 무슨 뜻 이었냐구."
얼굴이 빨개진 채 빠르게 말을 쏟아낸 신영은 시선을 돌려서는 우유에 손을 뻗쳤다.
문득 태영은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물론 외모도 귀여웠지만... 그리고 그의 하
반신의 어느 부분에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자신의 성기가 조금 빳빳해진 것이다.
" 그 말 그대로야."
"... 그걸 어떻게 알았는 ...데?"
" 그냥..."
신영은 자신의 질문을 회피하는 태영을 얄미운 고양이 바라보듯 째려보았다. 태영은
그런 그녀의 의문이 당혹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흥미롭기도 하고, 암튼 어린 아이의 치
기가 발동되어 놀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바램과는 달리 신영은 곧 돌아가
버렸다.
그녀가 가버리자 조금은 허탈해진 듯 했지만 그건 그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않
았다. 반대로 자신의 성기에 생겼던 이상한 감각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서 책
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태영은 좋아했다.
그날 밤, 한밤중에 태영은 잠에서 깼다. 생전 처음으로 한밤중에 잠이 깬 것이다. 그
것도 몽롱한 것이 아닌, 정신이 또렸해진 채로 말이다. 전에 없던 일이었기에 태영은
당황을 했다. 다시 잠에 들려고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아 봤지만 이미 잠이 달아나 버린
듯 말똥말똥 눈이 뜨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4분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물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창틀에 쌓인 눈 위로도 계속해서 눈이 쌓인다.
" 흠... 밖에 못나가게 되는 거는 아닐까."
어른들이 강원도에 눈이 많이 내리면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온다고 하던데...
그 광경이 보고 싶어진다. 약간 오줌이 마려운 거 같아서 자신의 방이 있는 2층 계단 옆의
화장실에 갔다. 오줌을 누고 눈을 비비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데 1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 뭐지..."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나? 내려가서 인사를 할까 하다가 괜히 새벽에 잠 안자고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을 까 해서 그는 자신의 방으로 그냥 가려고 했다.
" 흐응..."
신음소리였다. 여자의 신음소리. 태영은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내는 음성이란 것을
알았다. 어디 아프신 건가? 아님 내가 잘못 들은 걸까? 태영의 2층 계단 난간에 기대어
밑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약간씩 앓는 듯한 어머니의 신음이 들린다. 뭐지... 그때
난데 없이 남자의 생각이 머리 속에 들려왔다.
[ 크흐흐흐... 이년... 많이 굶주렸군...흐흐흐.]
아버지가 아니다. 어머니는 지금 누군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거다. 아직 어린 태영은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었다. 새벽 늦은 밤, 자신의 어머니가 낯선 남
자와 함께 거실에 있고 그 남자의 속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질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태영은 이제 갓 국민학교 3학년, 10살의 나이였을 뿐이었다. 그는 단지 남자의 속
생각이 시커멓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어머니
가 신음소리를 낸다는 것과 함께 낯선 남자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다.
" 이러지... 말아요..."
조금은 혀가 꼬부라진 어머니의 음성에 태영은 자신의 어머니가 술에 취했다고 여겼
다. 그리고 거부의 말을 하는 것과 달리 어머니의 음성은 너무나 달콤했다. 아직 어리
기만 한 태영 에게도 그러한 어머니의 음성은 이상한 감정이 자라게 만들었다. 그 감정
은 너무나도 낯설고 어두웠으며 축축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2층에서 계단을 조금씩 내
려와 꽃병이 장식되어 있는 계단참에 서서 어머니의 조금은 낮은 목소리를 듣자 태영은
자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것을 느꼈다.
" 사모님... 흡..."
남자의 말소리와 어머니의 신음소리 등등이 거실에 울리고 있었다. 너무나 작은 소리
였기에 태영은 잘 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달콤한 신음소리와 남자의 헐떡이
는 소리에 자신의 성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두운 거실에서 울리던 그 소
리는 어머니의 말과 함께 끊겼다.
" 방으로... 방으로 가요... 하윽..."
" 그러죠. 사모님."
그리고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자는 그 방으로
어머니와 모르는 남자가 같이 들어갔다. 태영은 층계참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심호흡만
을 했다. 영문도 모른 체, 어머니가 왜 저 남자와 안방에 들어간 건지, 자신의 성기가 왜
뜨거운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잠시 뒤 태영은 거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남자의 겉옷과 바지, 여성의 슈트 상의와
하의가 떨어져 있었다. 옆에는 스타킹도 떨어져 있다. 속옷만 입고 두 사람이 여기서 뭘
한걸까? 태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떨어져 있는 스타킹을 주워들었다. 어머니의 잔향이
남아있는 그 스타킹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달콤한 냄새가 날
줄 알았지만 약간의 땀냄새가 난다. 태영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가서는 침대에 누워
그 땀내 나는, 그러나 달콤할 지도 모를 스타킹의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1984년 추석. 태영은 부모님과 함께 서울의 강남에 있는 큰 저택으로 간다. 그곳에 태
영의 큰 백부댁이 있었다. 태영은 명절마다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명절마다의
재미였다. 태영의 집안은 잘나가는 사업가의 집안이었다. 아버지, 송양원은 3형제의 둘째
였고 부사장이었다. 인천에서는 알아주는 건설회사였다. 큰아버지, 송양춘이 사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는 그룹이 라는 개념이 아직 없던 때였다. 건설회사 외에도 시멘트 공장과 3
척의 원양어선을 가지고 있었고 그야말로 알아주는 사업가집안이다.
조부모때부터 재산이 있는 편이었고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이어받으면서 그 세를 더욱 불
려 놓았다. 작은 백부, 송양민은 현재 군대에 있었고 들어보니 대령이라고 한다. 태영이 학
교에 가기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당시 아버지들은 꽤나 바빴다. 그 사건으로
줄을 대어 놓았던 곳이 흐지부지 될 상황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다행히 군에 있던 작은 백부 덕에 줄을 유지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업은 더욱
잘 나갔다. 작은 백부는 대령에 불과했지만 대통령 라인의 직속이었다고 했다. 명절때면
서울에 있는 큰 백부의 집에 온 집안이 다 모였다. 태영은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까지 다
모인다. 그 만큼 큰 백부의 위세가 컸던 시절이었다.
큰 백부는 덩치가 엄청 큰 사람이었다. 큰 백모는 하얀 한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미인이
었다. 큰집에는 형 2과 누나 1명이 있었다. 송태윤과 송태헌, 송영주 라는 이름이었고 태
영은 사내아이들중 막내였기에 그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송영주는 이쁘장한 태
영을 가장 귀여워했다.
작은 백부는 당시 딸이 3명이 있었는 데 2명은 태영의 누나였다. 어른들은 군대에 있으니
딸만 낳는 다고 농담 삼아 말했는 데 2년 전에 또 딸을 낳았다. 제일 큰 누나가 송하은, 둘
째 누나가 송영은 이었고 2년 전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송경은이라는 아이였다.
작은 백부 역시 덩치가 컸다. 아버지들 중엔 태영의 아버지가 덩치가 좀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태영의 백부들이 컸기 때문이었고 태영의 아버지 역시 그 세대 중에서는 키가 큰
편이었다. 차례나 제사가 끝나면 방계의 친척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 점심을 먹고 얘기를
하던 방계의 가족들이 가고 나면 직계 친척들만 남아 얘기를 한다.
어른들 끼리 얘기를 하게 되면 백모들과 어머니들 역시 따로 모여 수다를 떨었다. 미인대
회 출신이라는 작은 백모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태윤의 방에 다과를 가져다 주며
애들끼리 놀 수 있게 해주었다.
태윤의 방은 고교생의 방 답게 꽤 컸고 그곳에 여섯 아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했다. 주로
공부가 주된 화제였는 데 태윤이야 이제 막 고교생이 되었다지만 태헌과 하은이 올해 고입
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얘기가 그쪽으로 많이 갔다. 영주와 영은이는 서로 귀엽다고 태영을
무릎에 앉히려고 난리였다. 동생, 그것도 남동생이라는 존재가 없다 보니 예쁜 태영을 애지
중지 한다. 보다 못한 하은이 한마디 했다.
" 그만해. 태영이 힘들겠다. 이리와 태영아."
태영은 헝클어진 머리인 채로 하은에게 갔다. 영주와 영은이는 서로 너 때문이라고 하고
그 모습을 보며 형들이 웃었다. 태영은 하은의 품에 안겼다. 나중에 커서는 184라는 큰키
가 되지만 이때, 4학년일 때의 태영은 아주 작은 아이였다. 중3인 하은의 가슴이 어느 정
도 나온 때라 태영의 볼에 하은의 가슴이 닿아 있었다. 태영은 달콤한 하은의 몸 냄새와
자신을 보듬어 안는 나긋한 여성의 몸에 취해 곧 잠이 들었다.
저녁이 되자 밥을 먹으라는 어른들의 말에 하은이 태영을 깨웠다. 달콤한 잠에 빠져 있
던 태영은 엉겁결에 하은의 가슴을 더듬었다.
" 아..."
방에는 하은과 태영이 뿐이었다. 다들 먼저 밥 먹으러 나간 사이였다. 태영은 하은의 가
슴을 저도 모르게 꽉 잡았고 약간의 고통에 하은이 얼굴을 찡그렸다.
" 아... 미안. 누나."
" 아...니. 괜찮아."
하은과 태영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 가자. 밥 먹으러."
작은 백부 가족이 먼저 집으로 출발을 했다. 강원도가 임지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태영의 가족은 9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태영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었겠지만 하은
에게 있어 가슴을 만진 첫 남자가 태영이라는 사실이 뇌리에 박혀버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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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어둑해졌다. 2006년 7월 여름에 접어 들면서 우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뉴스
에는 비가 오지않을 거라고 했었는 데, 아무래도 비가 올 것도 같다. 아사미 레이꼬는 혹
시나 몰라 준비했던 레인코트를 들고 택시 정류장에 섰다. 차를 수리 센터에 맡기고 나자
이동하기가 불편해졌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하지 않는 다는 부분에서는 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핸드폰이 울리자 이름을 확인하니 타에꼬다. 폴더를 열어 받는다.
" 레이꼬. 어디야?"
" 지금 막 회사 나왔어. 택시 타려고 기다리는 중. 근데 날씨가 영..."
레이꼬는 조금 불만인 듯이 투덜 댄다. 이런 날씨에 외출하기는 싫은 것이다. 그냥 집에 가
서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타에꼬는 그런 그녀를 타박한다.
" 날씨 안좋은 거는 이 시기면 당연한 거잖아. 괜한 불평 말고 와. 간만에 같이 스테이크
먹자. 오늘은 내가 살께."
" 와인도?"
" 와인? 땡기나 보네? 그래 와인도 내가 살 테니까 어서 와."
레이꼬는 택시가 오는 것을 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약속한 장소는 예전 대학교 때도 자주 가
던 레스토랑이었다. 유명인도 자주 오는 곳으로 스테이크의 맛도 좋고 고급의 와인도 있어서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 예약 하셨습니까?"
입구에서 정중히 물어보는 이에게 일행이 먼저 왔음을 말했다. 타에꼬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
여 그쪽을 가리키는 안내를 해준다.
" 빨리 왔네. 차가 별로 막히지 않았나 봐."
" 뭐 비가 오거나 하진 않으니까. 근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얼굴 보자고 하니 불안 하잖아."
말과는 달리 웃으면서 타에꼬를 쳐다 본다. 웨이터가 메뉴를 준다. 둘 모두 스테이크 풀 코스
에 와인을 주문했다. 타에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나 이번에 애인 만들었어. 신고 좀 하려고. 후후..."
레이꼬는 빙그레 웃으면서 축하를 해준다. 은테 안경을 쓰고 멋을 낸 모습이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평소와는 달리 노슬리브 니트에 미니스커트를 입어 운동으로 다
져진 늘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긴 다리를 꼬아 앉은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 잘됐다. 너 애인 없던 게 벌써 3년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 좋은 사람이 없었을 뿐이야. 나도 외로웠다고..."
29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까르르 웃는다.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 세 사람이 힐끗 바라
보더니 그 미모에 놀랄 정도다. 170에 가까운 미녀 둘이 서로 바라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은 황
홀할 정도다. 한명은 노출이 있는 니트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미끈하게 빠진 자신의 지체를 자
랑한다. 가슴 골이 보이는 것이 볼륨이 있어 보이는 몸매에 은테 안경을 쓰고 세미롱의 머리결
을 자랑하는 것이 지적으로 보인다. 반대편에 있는 여성은 직장 여성 특유의 정장을 입고 있
지만 역시 늘씬한 몸매에 정숙해 보이는 얼굴이 오히려 색기가 흐른다.
" 그런데 애인은 뭐하는 사람이야? 몇 살?"
" 너무 다그치지 마. 곧 올 거야."
" 여기에? 어머... 미리 말을 하지."
레이꼬는 핸드백을 열어 화장품을 꺼낸다. 뚜껑을 열고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본다. 회
사에서 퇴근할 때 화장을 이미 고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타에꼬
는 그런 레이꼬를 만류하며 웃는다.
" 예뻐. 넌 충분히 예뻐. 그리고 네가 왜 신경 쓰니. 내 남자야."
" 그래도... 오늘 첨 보는 사이인데... 게다가 너랑 잘되어 결혼하게 되면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좀 그렇잖아."
" 후후... 나, 그 사람 너무 맘에 드는 거 있지. 결혼도 생각 중이야."
타에꼬가 진심 어린 눈으로 얘기를 하자 레이꼬는 놀란 표정이다. 너무 눈이 높아 애인을 잘
사귀지도 않고 오래 사귀지도 못하던 친구가 하는 말이 이미 푹 빠진 모양이다.
" 어머머머... 어떤 남자 길래 네가 그렇게 목을 메는 거야?"
" 목을 메는 거는 아닌데... 그냥 그이가 너무 좋아서... 아, 저기 온다."
타에꼬가 누굴 발견한 듯 반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레이꼬는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다 보
았다. 거기에는 키가 큰 사내가 있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걸어오고 있었다. 180은 충분히
넘어 보이는 키에 어깨가 벌어진 것이 건장해 보였다. 다리는 길고 늘씬한 것이 마치 패션 모델
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머리칼이 약간 길어 눈까지 닿는 데 얼굴도 전체적으로 예쁜 얼
굴이었다. 레이꼬는 순간적으로 타에꼬에 대한 질투심이 일었지만 애써 잊으려 한다.
" 어서 와요. 여기..."
타에꼬가 일어나 남자를 맞이 한다. 예전의 타에꼬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저 도도한 친
구가 남자를 일어나 맞이하다니. 거기에 얼굴을 수줍게 붉히기 까지 한다. 물론 자신이 봐도
참 예쁘고 건장한 남자지만...
" 아... 젠장. 미안. 길을 잘 몰라서..."
타에꼬 옆의 의자에 앉는 남자는 약간 서투른 일본어로 거칠게 말했다. 음성은 낮으면서도 울
림이 큰 굵은 목소리다. 레이꼬는 남자의 음성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말
투가 남자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저기... 이쪽은 제 친구에요. 말했었죠? 고교 동창인 레이꼬
에요. 미즈가시 건설 비서실에 있어요."
" 아... 죄송해요. 여기 지리를 잘 몰라서 늦었네요. 안녕하십니까? 쿠로라고 합니다."
남자는 이제야 레이꼬를 보았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레이꼬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다. 자신의 손을 굳게 잡는 남자의 손이 하얗고 긴 것이 여자 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타에
꼬는 자신을 소개 하면서도 계속 남자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다. 그런 타에꼬의 모습에 질투심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도 남자의 머리칼을 보면 참 가늘면서도 윤기가 나는 모습에 자신도 자꾸
바라보게 된다.
" 아... 네... 전 방금 전에야 얘기를 들어서... 쿠로씨요?"
" 네. 쿠로요. 음... 사실 일본인이 아니라서... 그냥 일본에서만 부르는 이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제야 약간 서툰 일본어에 이해가 간다. 그래도 꽤 유창한 편이다.
" 그러세요? 음... 혹시 한국인이세요?"
" 네. 아무래도 억양에 묻어나나 보죠?"
" 아니요. 그런 거 보다는..."
타에꼬가 비로소 레이꼬를 바라다 보면서 말을 한다.
" 중국인의 억양은 아니니까. 그렇지?"
" 응. 제가 중국어를 조금 해서요. 한국어 쪽도 약간 알지만..ㅎㅎ"
" 아... 그러시군요. 아 참. 주문은 했어?"
" 네, 우리 거는 했어요. 자기는 뭐 드실래요?"
타에꼬의 시선은 금새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레이꼬는 또다시 고개를 드는 요상한 질투심에
고개를 흔든다. 근데 이애 존댓말을 쓰네.
" 음, 같은 걸로 하지 뭐.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웨이터가 돌아가자 타에꼬는 사내의 머리로 손을 뻗어 이마를 가린 머리칼을 옆으로 정리 한
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손짓에 약간 짜증을 낸다.
" 놔둬. 어차피 다시 헝클어 질 걸. 밖의 바람이 꽤 세네."
" 우기가 가까워 져서 그래요. 그래도 날이 덥지 않잖아요. 자. 이마를 드러내니 좋잖아요.
잘 생긴 얼굴 감추지 말아요. 뭐 다른 여자가 보는 거는 기분 나쁘지만... 일단 내가 봐야 겠
어요. 호호..."
이마가 드러난 사내의 팔을 잡으며 웃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레이꼬는 순간 자기 애인도 부를
까 하는 충동마저 든다. 하지만 부르면 우스워 질게 뻔하다는 생각에 곧 단념한다. 사내의 이
마가 드러나자 빛이 나는 느낌이다. 곧게 뻗은 이마 선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눈썹은 진
한 것이 강인해 보인다. 쌍까풀이 없는 눈이지만 속눈썹이 짙고 길어 눈이 예쁘다. 딱 레이꼬
의 취향인 얼굴이다. 아니, 모든 여자가 원하는 남성상이다.
" 그래? 그럼 나갈 때는 다시 머리 헝클을까? 그게 좋아?"
" 네. 그렇게 해요. 그게 좋겠어. 이 얼굴 나만 볼 거야."
왠지 자신만 따돌림 당한다는 느낌에 레이꼬는 입을 열었다.
" 너무 붙지 마. 사람들이 본다."
" 뭐 어때서. 애인끼리 붙는 게 이상한가?”
타에꼬는 아예 의자를 붙이며 몸을 기울여 팔짱까지 낀다. 남자는 웃으며 그런 그녀의 입술
에 키스를 한다. 레이꼬는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 그래. 너 좋을 대로 해. 아 스프가 나오네. 일단 드시죠."
스프를 떠 먹는 중에도 타에꼬는 남자를 챙기기 바쁘다. 소금과 후추를 미리 집어 남자에게
준다. 레이꼬는 후추를 잡으려다 미리 집어 가는 타에꼬를 멍하니 볼 뿐이다.
[ 이 기집애. 아예 신이 났네, 났어.]
고교때부터 차가운 인상에 안경까지 써서 우등생 티를 내던 타에꼬는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면서 그 차가운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고 다니던 친구였다. 칼로 자르는 듯한 태도에 남자가
접근하지도, 사귀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는 했었는 데... 3년만에 애인을 만들더니 아주 신
이 나서는 친구를 불러 놓고는 닭살 연애 행각을 벌인다.
" 고마워."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타에꼬가 건네준 소금과 후추를 친다. 그리고는 자신이 타에꼬의 스
프에 후추를 쳤다. 마치 타에꼬의 식성을 안다는 듯한 태도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며 소
금병과 후추병을 건넨다.
" 여기..."
" 고마워요."
레이꼬는 타에꼬를 찡긋 째려보며 병을 받아 뿌린다. 발을 뻗어 타에꼬의 다리를 툭툭 치자
사내를 바라보던 타에꼬가 고개를 돌린다.
" 왜?"
" 식사하자. 쿠로상 얼굴 닳겠다."
" 호호호... 질투 나니?"
" 그런 거 아니거든."
사내가 굵은 울림이 나는 음성으로 웃는다.
" 그래. 먹자. 배고파. 하루 종일 돌아 다녔더니."
세 사람은 스프를 먹으며 얘기를 나눈다. 사내는 지금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 타에
꼬의 눈빛이 잠시 착잡해 진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테니... 라는 눈빛이다. 하지만 곧 초롱
초롱 한 눈빛으로 쿠로를 바라본다.
" 그럼 직업은..."
" 아... 아직은 백수 에요. 전에 주식으로 번 돈을 까먹으면서 여행중이죠."
" 아... 한국에서요?"
" 네. 한국 주식으로 좀 벌었거든요. 한 곳에 메이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여기 저기 여행을
좀 했어요. 지금... 일본에 온 게 3년 전이네요. 들락 날락 하기도 했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단기간에 구경하기에는 볼게 많아서요."
레이꼬는 다 먹은 스프 그릇을 옆으로 옮기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나라를 좋게 생각하는
한국인에게 호감이 간다. 요즘 한류라고 하는 드라마 붐이 일고 있다고 하는 데... 자신도 한번
볼까 하다가 아직 손을 대지는 못하고 있었다.
" 이번엔 언제까지 계시려고요?"
" 음... 좀 길게 있을 거에요. 찾는 게 있어서요. 옛날 고문서를 아는 사람이 찾아봐 달라고
해서... 게다가 타에꼬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타에꼬의 손을 잡고는 입으로 가져가 새끼 손가락을 입에 문다. 날씬한 손가락을 입
에 물고 타에꼬를 바라다 보며 살짝 빠는데 타에꼬의 눈이 약간 흐려지는 것 같다. 움찔 거리
면서도 자신의 손가락을 내주는 타에꼬가 신기해 보인다.
[ 둘이서 이미 섹스를 했구나. 타에꼬가 얼마 보지 않은 남자에게 저런 것을 허락하는 애가
아닌데...]
" 나도 쿠로상이 계속 있었으면 해요. 나 병원 그만 둘까요?"
" 그건 안되지. 의사 선생님이 병원을 그만 두면 환자는 어떻게 해. 게다가 타에꼬의 개인병
원이잖아."
" 그래.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말아. 네 아버님이 내주신 병원이잖아."
타에꼬는 진심을 담은 눈으로 레이꼬를 바라다 본다. 진짜 완전히 이 남자한테 넘어갔구나.
" 그럼 당분간 문 닫지 뭐. 나도 같이 여행 다니지 뭐."
" 에휴... 정말이지. 쿠로상은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만나세요."
레이꼬의 짓궂은 농담에 쿠로가 웃으면서 대꾸한다.
"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세요.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 데요. 게다가... 이 옷안에 얼마나 매력
적인 열매가 숨어 있는 데요... 후후."
쿠로가 약간 성적인 농담을 하자 레이꼬의 볼이 붉어진다. 글라스를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데 타에꼬는 수줍음도 없이 쿠로의 입술을 빨고 있다. 이애가 정말...
스테이크가 나오고 소몰리에가 와서는 와인을 추천한다. 쿠로가 한 모금 마시더니 다른 것을
주문한다. 와인에 대한 상식도 풍부하다. 와인을 따라 건배를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쿠로는
유쾌한 남자였다. 나이는 자신들 보다 4살이 많았다. 32살이라기에는 동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머러스한 대화를 하면서 얘기를 주도해 나가는 데 스테이크가 입에서 살살 녹으며 와인을 마
시니 마치 자신의 애인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 타에꼬에 대한 질투심이 다시금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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